김재형 전 대법관 퇴임으로 대법관 공석이 생긴 지 한 달이 지났지만 후임 대법관 임명은 기약이 없는 상태다. 오석준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임명 동의 절차가 멈춰 있는 탓이다. 법원 안팎에선 대법관 장기 공백으로 상고심뿐 아니라 하급심 재판까지 연쇄적으로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오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 단계부터 최근까지 꾸준히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하지만 후보자 신분이라 대법관 업무는 전혀 볼 수 없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지난달 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도 진행되지 않았다. 지난달 초 퇴임한 김 전 대법관이 주심을 맡았던 미제 사건 330여건도 사실상 심리가 중단된 상황이다.
문제는 오 후보자 임명 절차가 언제, 어떤 방향으로 마무리될지 예측이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 8월 29일 오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린 뒤로 한 달 이상 지났지만 임명동의안은 국회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않고 있다. 오 후보자 측은 청문회 과정에서 논란이 됐던 ‘800원 횡령’ 판결, 윤석열 대통령과의 친분 등에 대해 최근까지 여러 번 해명을 내놨으나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후보자의 판결이나 대통령과의 인연만으로는 이번 사태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법조계는 본다. 수도권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800원 횡령 해고 판결이나 검사 징계 판결의 경우 국민 법감정에 미치지 못했다는 지적은 받을 수 있다”면서도 “법리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보기 어려운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현 정부에서 임명하게 될 13명의 대법관 중 첫 후보라는 점이 영향을 준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정치적 상황이 핵심 변수가 되고 있다는 말이다.
대법관 공석의 여파는 대법원뿐 아니라 일선 법원에까지 미칠 수 있다. 대법원에 사건이 적체된다고 하급심에서 판결 선고를 미루는 건 아니지만 대법원 판례를 기다리고 있는 사건들의 경우 영향을 받는 게 불가피하다. 지난 5월로 예정됐던 KT 전현직 근로자들의 임금피크제 소송 1심 선고기일도 대법원 판결 이후로 연기된 바 있다. 한 부장판사는 “대법관이 공석이라고 1, 2심에서 모든 사건의 심리가 지연되는 건 아니지만 법리에 대한 대법원 결론을 기다리는 사건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국회에서 대법관 인준 절차가 지연되는 일이 처음은 아니다. 2017년 조재연, 박정화 대법관도 여야 갈등으로 140일이 지나서야 업무를 시작할 수 있었다. 다만 대법관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전례는 없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