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어디로 가지?’… 고물가·월세 급등에 고시원족 눈물

입력 2022-09-29 00:02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고시촌 골목 풍경. 박민지 기자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고시원에 사는 황모(52)씨가 막노동, 폐지 줍기 등 닥치는 대로 일해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은 60만원 안팎이다. 월세 15만원짜리 동자동 쪽방촌에 살던 그는 5년 전 월세 28만원에 고시원을 얻어 이곳으로 옮겨왔다. 이후 월세는 쭉 ‘동결’이었는데, 지난달 고시원 원장에게 ‘10월부터 월세를 4만원 올리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그는 28일 국민일보와 만나 “요새는 식비도 많이 올라 하루 두 끼도 못 먹는데 월세를 더 낼 형편이 안된다”고 한숨 쉬었다. 이어 “고시원으로 신분 상승하듯 이사했었다”며 “2평 작은 방이어도 에어컨도 있고 따뜻한 물도 나와서 좋았는데 다시 돌아가야 할 처지”라고 말했다. 황씨는 원래 살던 쪽방촌을 비롯해 20만원대 방을 알아보고 있다. 쪽방촌도 월세가 30만원대로 뛴 곳이 있을 정도로 월세가 많이 오른 상황이라고 한다.

한국고시원협회에 따르면 최근 관리비 및 임대료 인상 등을 이유로 전국 고시원 대부분이 한 달 거주 비용을 3만원부터 10만원까지 올렸다. 황규석 고시원협회 회장은 “고시원은 준주거시설이라 방값 인상은 원장 자율”이라면서도 “가장 마지노선의 주거지라 경기 악화에도 10년 이상 (방값을) 동결한 곳이 대부분이지만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통상 고시원의 경우 새로 임차인을 받을 때 방값을 올려 받지만, 기존 임차인에게 방값 인상을 갑자기 통보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신림동 고시원 인근에서 만난 취업준비생 김모(24)씨가 그런 경우다. 살고 있는 고시원 월세를 다음 달부터 5만원 더 올려줘야 한다. “집에서 받는 돈으로 방값과 인터넷 강의료를 내면 식비로 37만원이 남는다”고 말하는 그의 손엔 즉석밥 3개와 인스턴트 사골국 1개, 참치 통조림 1개가 들려있었다.

‘주거의 최후 보루’라는 고시원 월세마저 뛰자 주거 취약계층 사이에선 살 곳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7년째 고시원에 거주 중인 이모(44)씨는 “원장님이 15년 만에 처음으로 월세를 올리게 됐다며 미안하다고 문자를 보냈다. 도저히 안 되겠다고 하시더라. 하루살이 형편에 5만원(인상)도 부담된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등 청년층이 받는 타격도 클 수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에 사는 청년 1인 가구의 65.8%는 월세 임차 가구다. 이 중 46.1%는 월세로 40만원 이하를 지출한다.

고시원 원장들은 그간 세입자 사정을 딱하게 여겨 인상을 미뤄왔지만 한계에 다다랐다는 입장이다. 10년 만에 월세를 3만~5만원 올린 고시원장 김모씨는 “라면 같은 간편식을 상시 비치해 놓는데 물가가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방값을 올리게 됐다”며 “세입자 반발이 있지만 폐업하는 것보단 낫지 않겠나”라고 했다.

서울시는 올해 임시주거 월세지원금을 지난해 27만원에서 32만7000원으로 올렸다. 매년 인상폭은 2만원 수준이었지만 올해는 물가상승을 고려해 6만원 가까이 올렸다. 하지만 월세 역시 크게 올라 30만원 초반대 고시원은 쪽방과 비슷한 수준이거나 가파른 언덕에 있는 등 접근성이 낮은 곳이 많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임시주거비 지원제도를 몰라 사비로 방을 구하거나, 명의도용·사기 등을 이유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도 많다”며 “주거비 지원에 그칠 것이 아니라 공공임대주택 형태의 주거지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