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하나금융과의 대화를 몰래 녹음해 이를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제출하는 등 치밀하게 분쟁에 대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무부는 28일 이런 내용이 포함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의 국제투자분쟁 해결 절차(ISDS) 판정문 전문을 공개했다. 영문으로 된 판정문은 A4 용지 411쪽 분량이다. 앞서 ICSID 중재판정부는 지난달 31일 한국 정부가 론스타에 2억1650만 달러(약 3100억원)의 배상과 1000억원 상당의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판정문을 보면 론스타는 2011년 11월 영국 런던에서 하나금융 고위층과 나눈 대화를 녹음해 한국 금융 당국의 부당 개입을 주장하는 증거로 제출했다. 당시 하나금융 측은 “(인하된) 금액을 합의하면 하루이틀 내 (금융위원회의) 거래 승인을 보장해 주겠다”고 론스타 측에 언급했다. 이런 내용이 중재판정의 쟁점으로 거론되자 하나금융 측은 “금융위는 가격 인하 및 승인과 관련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중재판정부는 “한국 정부가 가격 인하 때까지 승인을 보류하는 ‘두고 보기(Wait and See)’ 정책을 취해 공정·공평대우 의무를 위반했다”는 다수 의견을 도출했다.
중재판정부는 또 판정문에 “론스타는 ‘먹튀(eat and run)’라는 은유를 넘어, 속이고 튄(cheat and run) 투자자로 부를 수 있다”고 기재했다.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제기된 국내 반발 여론도 판정문에 담았다. 중재판정부는 “당시 외환은행 노조와 국회 내 정치인, 시민단체, 학자, 언론 등이 론스타에 대한 징벌을 촉구하는 분위기였다”며 “론스타가 ‘한국 탈출’을 시도한 시기가 좋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했다.
법무부는 “국민 알권리 보장과 중재절차 투명성 제고를 위해 법률상 최소한의 내용만 제외하고 원문을 공개한다”고 설명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날 언론과 만난 자리에서 “(판정에) 굉장히 아쉬운 게 있다. 취소 소송 여부를 정부 차원에서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민철 구정하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