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에세이를 읽는다, 이야기 비밀을 찾아서

입력 2022-09-29 20:32
나란히 에세이집을 출간한 폴란드 여성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왼쪽)와 SF 작가 김초엽. Karpati & Zarewicz / ZAiKS, 열림원 제공

올가 토카르추크(60)는 201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 여성 작가다. 정보라 작가는 그에 대한 애정을 종종 표시했다. 정보라는 ‘저주토끼’로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에 올랐을 때 “토카르추크 작가님과 함께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고, 토카르추크의 ‘낮의 집, 밤의 집’을 번역하고 싶은 꿈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초엽(29)은 2017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SF 작가다. 강렬한 데뷔작을 비롯해 ‘방금 떠나온 세계’ ‘지구 끝의 온실’ 등 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에 올리며 지난해 30만여명의 독자 온라인 투표로 선정되는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1위에 꼽혔다.


두 작가의 에세이집이 이번 주 나란히 출간됐다. ‘다정한 서술자’는 토카르추크가 노벨상 수상 이후 처음 출간한 책이자 그의 에세이집으로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책이다. 그동안 발표한 에세이와 칼럼, 강연록 중에서 열두 편을 작가가 직접 선별해 묶었다. ‘책과 우연들’은 김초엽의 첫 에세이집으로 자신의 창작 세계를 처음으로 공개한다.


두 작가는 국적도 다르고, 나이나 문학 이력에서도 차이가 크다. 하지만 이번에 출간한 에세이집에서 비슷한 주제들을 다룬다. 이야기는 어디서 나오는가, 문학적 인물들은 어떻게 창조되는가, 왜 이야기를 쓰는가, 읽기와 쓰기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문학이란 게 무슨 소용인가 등에 대해 얘기한다. 세계문학의 거장과 한국문학의 신성이 각각 쓴 에세이집을 함께 읽으며 창작의 비밀에 한 발 다가서게 된다. 토카르추크가 고공에서 문학을 설명해 내려온다면, 김초엽은 바닥에서 문학을 더듬으며 오른다.

탁월한 작품들을 써내는 작가들에게 가장 묻고 싶은 질문 중 하나는 ‘이야기는 어디서 나오는가?’일 것이다. 토카르추크는 이에 대해 “우리 주변에 우리가 이름 붙이고, 소리 내어 표현해 주기를 기다리는 주제나 이미지, 직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라며 “어떤 인물의 ‘창조자’라는 단어는 내게 좀 과한 표현처럼 느껴집니다. 그보다는 인물들을 세상에 데려오는 ‘산파’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 같습니다”라고 답한다.

김초엽은 “나에게는 영감이 샘솟는 연못도 비밀스러운 이야기보따리도 없다. 대신 나는 재료를 캐내고 수집하고 쓸어 담는다”면서 “이제는 글쓰기가 작가 안에 있는 것을 소진하는 과정이라기보다는 바깥의 재료를 가져와 배합하고 쌓아 올리는 요리나 건축에 가깝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두 작가의 에세이집이 공통적으로 읽기에 대해 길게 얘기하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김초엽은 “덜컥 소설가가 된 이후로 나는 종종 ‘쓰고 싶은 글이 없다’는 고민에 빠졌다”고 고백하면서 그 난감함을 읽기로 돌파해왔다고 말한다. “무엇을 쓰기로 결심하면 그에 대한 자료를 계속 찾아본다. 아무리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아도 관련된 책을 열 권 정도 읽으면 그 사이에서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서.

토카르추크는 문학을 공부하는 대학생들을 위한 강연에서 “프로이트를 읽은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없었다”는 경험을 소개하면서 “무엇보다 문학이라는 이름의 이 모든 현상에서 본질은 ‘읽기’이므로 나는 여러분이 ‘쓰기’가 아닌 ‘읽기’에 몰두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라고 조언한다.

토카르추크가 ‘다정한 서술자’에서 개진한 문학론은 복잡한 문학적 질문들을 구체적으로 파고 들면서 참신한 대답을 찾아나간다. 특히 “우리 안에서 말하는 무엇”을 ‘서술자’라는 개념으로 묘사하고 “인간에게는 영혼과 육체, 그리고 서술자가 있습니다”라고 선언한다.

그에 따르면, 서술자는 서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인물이나 주인공이다. 그는 “나는 바로 이 서술자에게 주도권을 넘겨줌으로써 소설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서술자는 나라는 이름의 내 모습과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습니다”라며 “나의 어떤 일부가 전체로부터 떨어져 나와 나와 스스로를 개별화시킨 뒤 아마도 자신만의 고유한 목소리를 내기로 결심한 것 같았습니다”라고 설명한다.

토카르추크는 서술자라는 등장인물을 데려와 말하게 하는 방식으로 소설을 쓰는데, 이 서술자는 “메탁시의 영토에서 머물다가 내 꿈을 찾아온 것이 분명합니다”라고 얘기한다.

그는 인간과 신 사이의 중간세계, 중간자들이 머무는 특별한 공간을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 ‘메탁시’(사이)를 빌려와 문학의 인물들, 즉 서술자가 태어나는 공간으로 설정한다. 메탁시의 영토에는 인류 고유의 기억과 경험, 신화, 옛 이야기들이 저장돼 있고 예술과 정신이 만들어낸 다양한 산물들이 모여 있다. 여기서 다양한 유형과 모티브, 신화 및 역사의 시간이 뒤섞인 혼합물이 만들어진다. “‘마치 ∼처럼’의 구역인 메탁시의 영토는 아마도 모든 문학적 인물이 거주하는 적절한 주소지일 것입니다.”

김초엽 에세이집은 문학이라는 망망대해에 뛰어든 젊은 작가의 막막함과 고민을 매우 솔직하게 드러내 보인다는 점에서 흥미진진하다. 김초엽은 스스로를 “밑천이 없는 작가”라고 여긴다. “나는 삶의 경험도 부족하고 아는 것도 적어서 내가 가진 것만으로는 도저히 이야기를 구체화할 수가 없다. 게다가 새로운 소설을 시작하면 언제 내가 소설을 써봤나 싶을 정도로 막막해진다.”

그런데 김초엽의 소설들은 왜 사람들을 매혹시키는가. 김초엽은 그 비결을 읽기라고 설명한다. 이 책은 ‘김초엽의 독서 이력’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가 읽어온 책과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나는 성실하게 읽는 사람이 되고, 그러면서 쓰는 사람으로 변모한다”고 그는 말한다. 읽기를 통해 쓰기가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쓰기란 “배우고 탐험하는 일, 무언가를 넓게 또는 깊게 알아가는 일, 세계를 확장하는 일”이라고 규정한다.

김초엽은 SF 작가로 과학과 문학에 대해 다듬어온 생각들도 펼쳐 놓는다. “차가운 우주는 유토피아를 허용하지 않는다. 냉혹한 물리법칙도, 인간의 진부한 규칙들도 이 우주에 유토피아를 위한 자리를 남겨두지 않는다. 그곳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영원히 그리운 세계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차가운 우주의 유토피아를, 그곳으로 가는 길을 상상한다. 어쩌면 그 모순에 맞서며 다른 세계로 가는 길을 상상하는 것이, 소설의 일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작가들이 쓴 에세이의 가장 큰 독자는 작가들일지 모른다. 김초엽은 “이따금 벽에 부딪힐 때, ‘쓰고 싶지만 쓰기 싫다’ 상태에 빠질 때… 나의 존경하는 작가들의 에세이를 펼친다”고 썼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