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대출 ‘만기 연장·상환 유예’ 다시 연장… 이번이 5번째

입력 2022-09-28 04:09
텅 빈 식당의 모습. 연합뉴스

정부가 이달 말 종료될 예정이던 코로나19 피해 자영업자 대출 만기 연장·상환 유예를 또 미뤘다. 더 이상 연장은 없다던 말을 뒤집고 5번째 연장을 결정한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이미 눈덩이처럼 불어난 부실 위험을 더 키우는 ‘땜질식 처방’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27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금융권 간담회를 열고 “만기 연장 종료는 최대 3년간, 상환 유예는 1년간 재차 미루기로 했다”면서 “고금리·고물가·고환율 등 경제 여건이 나빠 만기 연장을 예정대로 종료하면 대규모 부실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0년 4월 처음 시행된 만기 연장은 6개월 단위로 이미 4차례 연장됐다. 지난 6월 말 기준 57만2000명이 연장 혜택을 받고 있다. 총 141조4000억원 규모다.

금융위는 구체적인 만기 연장 기간을 금융사와 대출자 간 협의를 통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연체 등 거절 사유가 없으면 2025년 9월까지 만기 연장을 지원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당초 시장에서는 만기 연장이 예정대로 종료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앞서 김 위원장이 지난 7월 새출발기금 조성 계획을 밝히며 “만기 연장을 이어가면 더 큰 문제가 터질 수 있다”면서 종료를 사실상 예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야 정치권에서 모두 정부에 만기 연장 종료 시기를 미뤄 달라고 요청하면서 기류가 바뀌었다.

부실 리스크를 3년간 더 떠안게 된 금융권에서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현재 부실 위험은 대출 관련 통계를 왜곡할 정도로 커지고 있는데 당국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7월 말 국내 은행권의 원화 대출 연체율은 0.22%로 역대 최저 수준이지만 이는 잇따른 만기 연장 결정에 따른 착시 현상에 불과하다.

은행권 관계자는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보복 소비까지 일어나고 있는데도 만기 연장이 필요한 자영업자는 사실상 자력으로 빚을 갚을 수 없다고 봐야 한다”며 “만기 추가 연장은 자영업자에게도, 금융사에도 좋지 않다”고 말했다.


자영업자·소상공인 채무조정 프로그램인 새출발기금도 동력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이날부터 온라인 사전 신청을 받는 새출발기금을 이용하는 대신 만기를 또 미루려는 사람들이 늘 수 있다는 얘기다. 새출발기금 지원은 1개 이상 대출에서 3개월 이상 장기 연체가 발생했거나 폐업자, 6개월 이상 휴업자 등을 대상으로 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새출발기금을 이용하려고 미리 폐업을 결정한 자영업자만 피해를 보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번 만기 연장으로 금융 정책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떨어졌다는 비판도 있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금융 당국이 정책 추진 과정에서 일관성을 잃으면 현장에서 느끼는 부담은 몇 배로 커진다”면서 “일부 자영업자의 도덕적 해이를 막고 한국 경제 뇌관인 가계부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부실 위험에 대한 현실적인 대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