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스톰(복합 위기)’ 앞에 선 기업들이 ‘외부 수혈’로 위기 돌파에 나섰다. 전례없는 불확실성에 빠지자 인수·합병(M&A)으로 반등을 모색하고 있다. 위기일수록 경쟁력을 높이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고, M&A가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영국 반도체 설계기업 ARM 인수 참여를 사실상 공식화했다. 전 세계 IT업계의 시선은 다음 달로 예정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회동에 쏠린다. ARM 인수 관련 논의가 구체화할 전망이다.
소프트뱅크 지분 100%를 보유한 ARM은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 역량을 단숨에 끌어올릴 수 있는 카드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에서 부동의 1위다. 다만 시스템반도체에서 후발주자에 머물러 있다. 반도체 설계 역량이 선두주자와 비교해 떨어지고, 그렇다보니 과감한 투자를 망설이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 있다.
세계 IT업계에서 ARM의 위상은 절대적이다. 퀄컴, 애플 등이 만드는 모바일기기에 들어가는 칩셋은 대부분 ARM 설계를 기반으로 한다. 특정 업체가 ARM을 소유하게 되면 특허 등에서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ARM의 위상이 막강하다 보니 2019년 엔비디아에서 추진한 ARM 인수는 여러 정부 당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삼성전자도 비슷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때문에 단독 인수보다 다른 업체와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이 부회장이 공개적으로 ARM 인수 참여를 밝힌 것도 다른 업체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또한 한화그룹은 14년 만에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다시 추진하면서 외연 확대에 돌입했다. 한화는 지난 26일 2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로 대우조선 지분 49.3%를 확보하는 걸 골자로 하는 조건부투자합의서를 산업은행과 맺었다. 한화그룹은 미래 성장엔진으로 키우고 있는 그린에너지, 방위산업(방산)에서 대우조선과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판단한다. 방산 분야에서 육해공을 아우르게 되고, 그린에너지 분야에서 액화천연가스(LNG), 수소, 암모니아 운송, 해상풍력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지난해에만 1조원 이상을 M&A에 투입했던 현대차는 지난 8월 자율주행 솔루션 업체 포티투닷을 4200억원에 사들였다. 현대차는 차세대 자동차와 도심항공교통(UAM), 자율주행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동박 제조업체 일진머터리얼즈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롯데는 그룹 차원에서 전기차 소재·충전 분야에 힘을 쏟는 중이다. 롯데는 지난 1년간 10건 이상의 M&A를 단행하면서 적극적으로 신사업을 찾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인수 관련 검토를 진행 중이나 아직 구체적인 사항은 결정된 바 없다”는 입장이다. GS그룹도 허태수 회장 취임 이후 M&A를 통한 신사업 진출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 최근 구강 스캐너 기업 메디트 인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이 M&A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신사업을 바닥부터 시작하는 것보다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서다.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은 규모가 커서 신사업을 하기에 비효율적인 측면이 있다. 유망한 스타트업을 인수하거나 회사를 합쳐 시너지를 내는 게 리스크를 줄이고 산업 생태계에도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