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해결한다더니… 내년 임산부 먹거리 지원예산 삭감

입력 2022-09-26 04:03

올해로 3년차를 맞은 ‘임산부 친환경 농산물 지원 사업’이 폐지될 위기에 처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 중 해당 사업 관련 예산은 한 푼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농식품 바우처 사업에 이 사업을 통합해 시행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빨라도 3년 후에나 지원이 재개된다. 설령 지원을 재개해도 중산층 이상 임산부는 혜택을 볼 수가 없게 된다. 정부가 세계 최저 수준인 저출산 문제에 ‘말로만’ 정책지원을 약속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임산부 친환경 농산물 지원 사업은 임신 중이거나 출산한 지 12개월 이내 산모가 본인 부담금 9만6000원을 내면 연간 48만원어치 친환경 농산물을 구매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는 사업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 ‘에코몰’을 통해 회당 3만~10만원 한도 내에서 구매가 가능하다.

사업에 참여한 임산부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올해 사업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84.7%가 ‘만족한다’고 답했다. 사업 첫해인 2020년 설문조사 결과(58.4%)보다 26.3% 포인트나 긍정 답변 비중이 늘었다. 아이를 또 낳으면 재참여하겠다는 응답은 99.9%에 달했다.

이에 정부는 첫해 135억4000만원이던 사업 예산을 지난해와 올해에는 각각 157억8000만원으로 증액했다.

그랬던 사업 예산이 내년 예산안에서는 ‘0원’이 될 처지다. 예산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는 국정과제 추진을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정부는 국정과제를 통해 저소득층에게 농산물을 지원하는 사업인 ‘농식품 바우처’를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원 확대 과정에서 먹거리 지원 사업을 통합하겠다는 방향성도 내비쳤다. 임산부 친환경 농산물 지원 사업이 통합 대상에 포함돼 있다 보니 예산 편성을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통합될 경우 지원 공백기가 생긴다는 점이다. 국정과제 일정상 농식품 바우처 지원 사업이 확대 개편하는 시점은 2025년부터다. 최소한 2023~2024년에는 임산부와 영아를 위한 친환경 먹거리 지원이 불가능하다.

지원 대상이 축소되는 점도 논란거리다. 농식품 바우처 사업은 중위소득 50% 이하 가구를 지원하도록 설계됐다. 설령 2025년부터 사업이 시작되더라도 중위소득 50%를 초과하는 가구에 속한 임산부들은 지원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기재부 관계자는 25일 “농식품 바우처로 통합하면서 논의를 해 봐야 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이 경우 임산부 먹거리 지원조차 선별 복지 대상이냐는 논란이 일 수 있다. 지난해 기준 0.81명인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로 전 세계 최저 수준인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보편적 복지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새 정부가 아무리 문재인정부에서 도입된 사업을 지우고 싶어도 이 사업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