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컵 보증금제 유예→ 축소… 다시 말 바꾼 환경부 신뢰 추락

입력 2022-09-26 04:05

환경부가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을 6개월 유예한 데 이어 제주·세종 지역에서만 우선 시행하겠다고 발표하자 ‘정책 후퇴’ 논란이 또다시 불거졌다. 환경단체는 물론 식당·카페 자영업자들도 “정부의 일방적 결정”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정부가 제도 정착과 확대를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내놓지 못하면서 일회용컵 보증금제 자체가 좌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25일 환경부에 따르면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오는 12월 2일 제주도와 세종시 2곳에서만 시행된다. 애초 환경부는 전국 프랜차이즈 매장 3만8000여곳을 대상으로 지난 6월부터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등을 이유로 시행 3주 전 갑자기 제도 시행을 한 차례 유예했었다.

이후 이해관계자 간담회 등을 진행해 왔던 환경부는 컵 반환보증금을 300원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시행 초기 컵 반납처는 ‘같은 브랜드 매장’으로 한정했다. A브랜드의 일회용컵은 A브랜드 매장에서만 반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유예 전 환경부는 브랜드에 관계없이 구매 매장 이외의 매장에 반납해도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구상했었다.

자영업자들이 요구했던 바코드 라벨 구매비(개당 6.99원), 보증금 카드수수료(개당 3원), 표준용기 처리지원금(개당 4원) 등은 모두 정부가 지원한다. 프랜차이즈 본사의 경우 사실상 비용 부담을 지지 않는 구조다. 환경부는 또 공공장소에 무인회수기를 집중 설치하고, 희망 매장에는 무인회수기 설치비용도 지원하기로 했다. 다만 제도 유예 전 개발에 착수했던 무인회수기는 여전히 성능테스트 중이고, 보급 시점도 정해지지 않았다.

환경부는 지역 성과 평가 등을 거쳐 전국 확대 청사진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제도를 시행하는 구체적인 일정은 제시하지 못했다. 정선화 자원순환국장은 “(성과 평가는) 지자체와 협의해 프로그램을 짜야 한다”고만 말했다.

녹색연합 등 환경단체들은 “정책이 신뢰를 잃은 마당에 몇 달 후 제도 시행을 발표한다고 해서 누가 믿을 수 있겠나”며 “전면시행을 포기한 것은 환경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전국카페사장협동조합도 전국 실시를 기준으로 논의해온 환경부가 갑자기 말을 바꿨다는 입장을 냈다.

법률에 명시된 시행 시기와 지역을 정부부처에서 변경하는 건 위법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국회와 사전협의도 없이 법률 시행 시기와 지역을 지자체와의 MOU(업무협약) 결과에 따르겠다는 정부의 발상이 어이없다”고 말했다.

세종=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