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화가 승연례(73)는 ‘야자수의 작가’다. 그가 그린 야자수(사진)에는 언제나 바람의 흔적이 있다. 미풍에 살랑이기도 하지만 광풍에 뿌리 채 흔들기도 한다.
이처럼 풍성한 잎을 드리운 채 바람을 타고 흔들리는 야자수의 다채로운 자태를 독창적인 조형 언어로 풀어내는 승 작가가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갤러리조은에서 개인전 ‘BLOOMING’을 통해 신작 40여점을 선보이고 있다.
그가 야자수에 눈길을 둔 것은 2017년 무렵이다. 미국 서부 샌디에이고를 자주 여행하던 그는 2층 창문 너머에서 본 야자수의 자태에서 싱싱한 생명력을 느꼈고 이에 영감을 받아 귀국 후 줄곧 야자수만 그린다.
야자수를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캔버스에 한 두 그루를 넣을 뿐이고 색상도 두어 가지로 제한해 쓸 뿐이다. 덕분에 평붓을 한 번에 휘둘러, 신체의 흔적을 남기듯 그린 야자수에서는 늘 바람이 인다. 줄기조차 바람에 춤추듯 움직인다. 작가는 아크릴 작품 뿐 아니라 크레용 등으로 드로잉한 야자수도 선보이고 있는데, 단색의 드로잉이 주는 또 다른 선맛이 있다.
바람을 타고 흔들리는 야자수의 유연하고 강인한 자태는 늦깎이인 작가의 자화상이나 마찬가지다. 야자수는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작가로 새 출발하는 계기를 준 나무다. 작가는 서라벌예대를 나왔지만 맏며느리로, 아내로, 두 아이 엄마로 살면서 작업을 하지 못했다. 중증이었던 천식도 작업을 방해했다. 때마침 야자수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천식도 개선돼 2017년 첫 개인전을 할 수 있었다. 2020년 조은갤러리에서 가진 두 번째 개인전에서 야자수를 본격적으로 선보였다. 이번에는 2년 전보다 색이 화려해져 왕성한 의욕을 보여준다. 10월 5일까지.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