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김건희 특검법’ 처리를 두고 극한의 대치를 벌이고 있다.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각종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며 지난 7일 특검법을 당론으로 발의한 더불어민주당은 강행처리를 불사할 기세로 여론전을 벌이고 있다. 이에 국민의힘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 물타기’라고 반발하며 야당의 강행처리 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맞선다. 양측 모두 한 치도 물러설 기색이 없다. 정기국회 과정에서 어떻게 결론이 날지 주목된다.
민주당이 발의한 김건희 특검법은 수사팀 규모를 역대 최대였던 2016년 ‘최순실(개명 최서원) 국정농단 특검’(105명)과 비슷한 규모로 꾸리도록 했다. 특검 1명과 특검보 4명, 파견검사 20명, 특별수사관 40명, 파견공무원 40명 등이다. 특히 특검 후보 2명은 대통령이 소속되지 않은 국회 교섭단체가 추천하도록 했다. 사실상 민주당이 특검 후보를 추천해 윤석열 대통령 앞에 올려놓겠다는 얘기다. 특검의 수사 대상은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개입 의혹, 허위 경력 의혹, 뇌물성 후원 의혹 등 3가지로 설정했다.
역대 특검 대부분 여야 합의로 출범
특별검사제도는 검찰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고위 공직자가 수사 대상이 될 경우, 중립적인 특별검사에게 수사를 맡기는 제도다. 정치적 외풍으로 인해 검찰 수사의 공정성을 의심받는 사건을 특검이 독립적인 수사로 규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국회 입법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특검 출범까지 늘 소모적인 충돌이 반복돼 왔다.
현재까지 국회를 통과한 특검법은 총 15건이고, 이 중 여야 합의로 처리된 것은 14건이다. 2007년 ‘BBK 특검’이 여야 합의 없이 처리된 유일한 특검이다. 당시 대선을 2주 앞두고 검찰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BBK 주가조작과 다스 실소유 의혹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하자, 여당인 대통합민주신당이 재수사를 위한 특검법을 발의했고 한나라당은 결사 저지에 나섰다. 특검법은 법제사법위원회 심의 없이 국회의장이 직권 상정했고, 한나라당이 표결에 불참한 가운데 통과됐다.
우리나라 특검의 시작은 김대중정부 때인 1999년 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과 검찰총장 부인 옷 로비 의혹 특검이다.
진형구 당시 대검찰청 공안부장의 취중 발언으로 촉발된 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과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 부인이 연루된 옷 로비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부실했다는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당시 여당이 수세에 몰렸고, 결국 특검법이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했다.
이후 2001년 이용호 게이트, 2003년 대북 송금 사건과 노무현 대통령 측근 비리 의혹, 2005년 러시아 유전 개발사업 의혹, 2007년 삼성 비자금과 BBK 사건, 2010년 스폰서 검사 의혹, 2012년 선관위 디도스 사건과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2018년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 2020년 세월호 참사, 올해 이예람 중사 사망사건을 수사하기 위한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특검은 사건마다 별도의 특검법을 제정하거나 상설특검법에 따라 임명할 수 있다. 특검법 처리 때마다 극한의 진통을 겪자 국회는 2014년 상설특검법을 통과시켰지만, 이후 적용된 사례는 2020년 ‘세월호 참사 특검’ 1건에 불과하다. 당시 국회가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요청을 받아들여 세월호 특검팀이 꾸려졌다.
특검법이 발의됐으나 여야가 합의를 이루지 못해 특검이 무산된 경우도 적지 않다. 2005년 안기부 X파일 사건과 지난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 땅 투기 의혹 특검법이 그 사례다.
지금까지 진행된 특검에서는 대부분 굵직한 성과가 나왔다.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의 결과로 미르·K스포츠재단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씨의 이익을 위해 설립됐다는 사실을 확인됐고, 최씨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특검의 수사는 결과적으로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다. 2018년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 특검 역시 권력의 핵심부를 향했다. 문재인정부 출범 1년 만에 실시된 특검 수사로 문재인 전 대통령의 복심인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기소됐고, 법정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김건희 특검법’ 앞날 예단 어려워
이제까지 거의 모든 특검이 여야 합의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김건희 특검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국내 정치적 상황과 여론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특검법 처리가 무산될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민주당은 169석의 원내 1당이지만, 법사위원장을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이 맡고 있어 특검법의 법사위 통과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민주당은 법사위에서 특검법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리는 방안을 고민했으나 캐스팅보트를 쥔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반대 의사를 밝혀 이것도 어려운 상태다.
민주당은 ‘국민 여론’에 희망을 걸고 있다. 김 여사가 연루된 각종 의혹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계속 쌓이면 여당도 특검법을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기대다. 민주당 관계자는 23일 “국정농단 특검이나 드루킹 특검 모두 야당이 발의하고, 여당이 여론을 못 이겨 수용했다는 점을 떠올려 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아직 예단할 수 없다고 말한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당분간은 끝이 안 보이는 지루한 공방이 계속될 것”이라며 “의혹을 풀고 가지 않으면 대통령과 여당 모두 치명타를 입기 때문에 물밑 협상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도 변수로 꼽힌다. 최 원장은 “(현재 30%대인) 대통령 지지율이 더 떨어지면 대통령실과 여당이 정치적 돌파구 마련을 위해 특검을 전격 수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승연 기자 ki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