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한국에 출시한 폭스바겐의 첫 전기차 ID.4의 주행거리는 405㎞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주행거리 522㎞를 인증 받았었다. 한국에 들어오면서 100㎞ 이상 손해를 본 것이다. 전기차 제조사들은 한국의 주행거리 인증이 가장 까다롭다고 입을 모은다. 왜일까.
유럽은 전기차 주행거리를 인증할 때 국제표준시험방식(WLTP) 기준을 적용한다. 유엔 유럽경제개발기구가 기존에 쓰던 유럽연비측정방식(NEDC)의 문제점을 개선해 2017년 9월 도입했다. 실내 실험실에서 차량을 차대동력계 위에 올려 평균 시속 47㎞, 최고 시속 130㎞로 총 23㎞ 주행해 평가한다. WLTP는 주행모드, 급가속, 공조기(에어컨·히터) 사용 여부, 외부 온도, 배터리 상태에 따른 변수 등을 반영하지 않는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보다 다양한 환경에서 복합적으로 평가한다. 이를 ‘멀티 사이클 테스트(MCT)’라고 한다. 도심주행시험에서는 최고 시속 90㎞로 중간에 수십번 정차하며 배터리가 방전될 때까지 달린다. 고속도로주행시험에서는 정차 없이 최고 시속 96㎞로 주행한다. 이렇게 나온 결과를 5.5대 4.5 비율로 반영한다. 또 이 수치에 0.7을 곱한다. 측정하지 않은 변수(주행 환경, 외부 온도 등)를 고려하면 실제 주행 가능거리는 약 30% 줄어든다고 본 거다.
통상 업계에서는 EPA 주행거리가 WLTP 대비 10~15% 짧다고 본다. 전기차는 고속주행을 할 때 주행거리가 짧아진다. 감속할 때 발생하는 제동력을 전기 에너지로 바꿔 배터리를 충전하는 ‘회생제동’의 덕을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유럽은 도심주행에 초점을 두고, 미국은 고속 장거리 주행을 더 중요하게 본다. 유럽에서 후하고 미국에서 박한 결과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의 인증 검사는 더 엄격하다. 벤츠 EQA의 경우 유럽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주행 가능거리가 426㎞(WLTP 기준)에서 302.76㎞(환경부 기준)로 줄었다. 르노 조에(395㎞→308㎞), 푸조 e-208(340㎞→277㎞) 등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 교통환경연구소에서 주행거리를 인증한다. 기본적으로 EPA 방식을 따른다. 여기에 한국 상황에 맞게 개발한 ‘5-사이클’ 보정식을 대입하면서 주행거리가 다소 감소한다. 고온과 저온에서의 주행거리를 따로 구분하는 것도 한국뿐이다. 전기차는 저온에서 주행 가능거리가 짧아지는데, 고온에서 측정한 수치의 70%에 미치지 못하면 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
한국의 주행거리 인증이 가혹하다고 느낀 완성차 업체들은 자체 실험을 통해 실제로는 더 멀리 갈 수 있다고 알리기도 한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20일 “국가마다 운전습관, 기후, 도로 상황 등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나라의 방식이 맞다고 단정할 수 없다. 한국의 주행거리 인증 방식은 최악 상황을 가정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10~20% 정도 더 주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