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에 말라가는 돈줄… 기업들 피 마른다

입력 2022-09-20 04:08

대구 지역 자동차부품업체 A사는 1년 전에 전기차 부품 생산을 위해 설비 투자를 진행했다. 하지만 최근 금리 인상으로 고금리 폭탄을 맞자 이자 상환도 버겁다. 결국 설비투자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부산에서 조선업체를 운영하는 B씨는 “업종 특성상 차입 비중이 높아 저금리 정책자금을 활용하는데, 자금 수요에 비해 저금리 대출한도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은행에서 중견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대출의 한도를 줄이는 등 자금조달 여건이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산업계가 고환율·고금리·고물가 ‘삼중고’에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고금리가 기업 활동의 발목을 잡는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국내 제조기업 307곳을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한 결과, 응답기업의 61.2%는 “고금리로 실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고 19일 밝혔다. 기업 10곳 중 6곳에 고금리 피해가 현실화한 것이다. ‘어려움 없다’고 대답한 기업은 12.7%에 불과했다. 고금리가 유발한 가장 큰 장애물은 ‘이자 부담에 따른 자금사정 악화’(67.6%)다. 설비투자 지연 및 축소(29.3%), 소비위축에 따른 영업실적 부진(20.7%)이 뒤를 이었다.


견딜 수 있는 기준금리 수준은 얼마일까. 기업들은 2.91%를 지목했다. 현재 한국의 기준금리는 2.5%다. 올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결정 시기는 두 번 남았다. 전문가들은 연말에 기준금리가 2.75~3.0%에 이를 것으로 본다. 대한상의는 “원자재 가격과 환율 급등에 따른 고비용 경영 환경 속에서 이자 부담까지 높아지고 있다. 현재 기준금리 수준에서도 기업이 돈을 빌릴 때 시중 대출금리는 연 5~6%를 넘어서고 있다. 기업들 위기감이 크다”고 진단했다.

기업들은 당분간 금리 인상 추세가 이어진다고 예측한다. 내년 상반기까지 지속할 것으로 예상한 기업이 38.8%로 가장 많았다. 내년 연말(17.6%)이나 2024년(8.5%)까지 이어진다고 내다보는 기업도 적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는 것이다. 고금리 피해가 현실화함에도 대응책을 마련한 기업은 20.2%에 불과했다. 비용 절감 등의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거나 고정금리 전환, 대출금 상환유예 같은 방법을 찾은 기업도 있지만 극소수였다. 중소기업의 경우 10곳 중 1곳만이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답했다. 김현수 대한상의 경제정책실장은 “물가와 환율 안정을 위해 선제적 통화정책이 불가피하지만, 그 결과가 기업의 부담이 되고 기업 활동 위축으로 이어지는 딜레마에 빠진 상황”이라며 “기업들이 유동성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고비용 경제상황 극복을 위한 금융당국의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