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스토킹이란 범죄에 눈을 뜬 건 1999년이었지 싶다. 그해 각국에서 사건이 잇따랐다. 일본은 오케가와시(市) 기차역에서 스물한 살 여대생이 살해당했다. 옛 남자친구가 2000만엔에 킬러를 고용해 벌인 청부살인. 그는 범행 전 넉 달간 30분마다 전화하고 살해 협박을 하며 여대생을 쫓아다녔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묵살당하자 여대생은 “만약 내가 죽으면 범인은 그 사람”이라는 유서까지 써뒀는데, 실제 그리되고 말았다. 경찰이 죽인 셈이란 비난 여론이 일면서 이듬해 스토킹 규제법이 제정됐다.
영국에선 BBC 여성 앵커 질 댄도가 런던의 집 앞에서 피살됐다. 범죄추적 프로그램 ‘크라임워치’를 5년째 진행하던 인기 앵커가 총격살인의 대상이 된 것이다. 끝내 범인을 잡지 못했는데, 댄도의 약혼이 알려진 직후의 일이어서 그를 추종하던 스토커 팬의 짓이란 가설이 유력하게 제기됐다. 영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이 사건은 스토킹 경각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미국에선 개리 델라펜타라는 남자가 한 여성을 쫓아다니다 기소됐다. 구애가 통하지 않자 인터넷에 그녀의 이름으로 “나는 강간을 원한다”는 게시물을 수없이 올려 실제 강간범이 그녀를 찾아가게 만들었다. 델라펜타는 미국의 첫 사이버 스토커로 처벌됐고, 앨 고어 부통령은 사이버 스토킹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한국에서도 탤런트 도지원씨가 스토커에게 납치당했던 사실이 알려지고, 최진실 김창완씨 등 연예인 피해가 잇따른 1999년 스토킹 처벌법이 처음 발의됐다. 벌금 8만원의 경범죄이던 것을 중하게 벌하려는 첫 시도였지만, 법안은 통과되지 못했다. 이후 22년 동안이나 그랬다. 2021년 서울 노원구의 세 모녀가 스토커에게 살해당한 뒤에야 스토킹 처벌법이 제정됐는데, 처벌 조건과 수위, 피해자 보호 규정 등이 현실과 동떨어져 ‘스토킹을 모르는 처벌법’이란 지적이 이어졌다. 늦어진 입법에 너무 많은 이들이 고통을 당하고 목숨을 잃었다. 미흡한 처벌법은 신당역 역무원을 지켜주지 못했다. 확 바뀌지 않는다면 계속 그럴 것이다.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