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물건이란 무엇일까요? 소비만능시대라지만 물건을 살 때 ‘버릴 순간’을 먼저 고민하는 소비자도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화는 한 쪽의 노력만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제품 생산과 판매단계를 담당하는 기업들의 노력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굿굿즈]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기업과 제품을 소개하고, 꾸준히 지켜보려 합니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 더 많은 참여를 기대합니다.
‘이것’은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상품 가운데 하나다. 몇백원짜리 제품부터 몇만원짜리까지 의외로 선택지는 다양하다. 차별화한 맛이 있을까 싶은데,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를 느낀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서 내년이면 한국 시장의 규모가 2조원에 이른다고 추산하는 이것은, 생수다.
생수 시장은 연평균 10%대 성장률을 보이며 몸집을 키우고 있다. 그만큼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도 늘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9년에 연간 폐페트병 배출량은 30만1829t이었다. 전 국민이 1인당 86개의 페트병 제품을 사용한 셈이다. 지구적 기후위기에 직면하면서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은 심각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최근 몇 년간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 페트병 경량화, 무라벨 생수병, 플라스틱 재활용을 둘러싼 다양한 연구·시도가 등장한 것은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외면할 수 없어서다.
소비자 입장에서 막연히 생각했을 때, 가벼운 생수병 만들기는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다. 플라스틱을 덜 사용하면 비용을 줄일 수 있을 테니, 기업이 하지 않을 이유도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유통되는 모든 생수병에 ‘경량화’가 적용되지 않고 있고, 경량화의 ‘마지노선’도 존재한다. 왜 그럴까.
이런 의문을 품고 지난 14일 서울 송파구 풀무원샘물 서울사무소에서 김정아 풀무원샘물 마케팅 부장, 김성환 풀무원샘물 생산팀 과장을 만났다. 생수병 초경량화의 여정과 기업의 친환경 노력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듣기 위해서였다.
풀무원샘물은 한국에서 생수병 경량화를 가장 먼저 시도했다. 아직 플라스틱 쓰레기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기 전인 2009년이었다. 여러 차례 변화를 시도한 끝에 최근까지 500㎖와 2ℓ 제품군 가운데 가장 가벼운 생수병을 만드는 기업이기도 하다.
‘생수병 경량화’는 과연 어려운 작업일까. “물은 단순하지만 어려워요. 깨끗한 물만 팔면 되는 것 아니냐고 볼 수 있는데 다양한 성분, 안전성 관리, 그걸 담는 그릇, 포장 등 어느 것 하나 간단한 게 없습니다. 생수병 경량화도 그렇습니다. 생수병을 마냥 가볍게 만들면, 안에 담은 물을 감당하지 못할 수 있어요. 뚜껑의 높이를 낮추면 제대로 안 닫힐 수 있고요. 소비자 불만, 안전성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거죠.”(김정아 부장)
풀무원샘물은 500㎖ 제품의 경우 2009년 15g에서 2011년 13.5g, 2013년 12.1g, 2018년 11.1g까지 무게를 줄였다. 페트병 무게를 낮춘 결과, 2018년 기준으로 연간 플라스틱 사용량을 전년 대비 87t을 감축했다. 김 부장은 “500㎖짜리 생수병 무게는 현재로서 11.1g보다 더 가볍게 만들기 힘들다고 본다”고 전했다.
풀무원은 생수병만 가볍게 만든 게 아니다. 뚜껑에도 변화를 줬다. 2013년 한국에서 최초로 ‘지름 29㎜, 무게 1.4g’의 초경량 뚜껑을 전 제품에 적용했다. 이를 통해 풀무원샘물은 제품 생산부터 운반, 판매, 재활용에 이르기까지 전 단계에 걸쳐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업계 대비 42% 절감했다.
그동안 페트병 무게를 줄일 때마다, 초경량 뚜껑을 닫아 제품으로 완성하기까지 6개월 안팎의 시간이 걸렸다. “포장을 가볍게 바꾸려면 설비부터 바꿔야 해요. 뚜껑의 높이가 낮아지면 ‘캡핑’ 기기를 바꿔야 합니다. 부품 하나하나가 달라질 수 있는 일이에요. 뚜껑을 가볍게 바꾸는 게 정말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김성환 과장)
테스트하려면 공장을 잠시 멈춰야 한다. 공장 가동을 멈추는 날에 시험을 해보거나, 일부 멈추는 곳에서 빠르게 진행을 하거나, 급하면 테스트만을 위해 공장 자체를 세우기도 했다. “‘탑 로드’ 작업이 중요해요. 압축시험기로 위에서 눌렀을 때 변형 범위가 5㎜ 이내여야 하거든요. 누수가 생기지 않는지 확인하는 겁니다. 가벼운 생수병과 가벼운 뚜껑이 대량으로 적재됐을 때 얼마큼 무게를 견딜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거죠. 이게 바로 맞아떨어지면 좋을 텐데, 맞지 않으면 감량 수준을 바꿔야 하고 설비를 재조정해야 합니다. 이런 일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양산 과정에 이르게 됩니다.”(김 과장)
공장에서 안전성을 확인했다고 끝이 아니다. 이동하면서 문제가 없는지 살펴야 한다. 테스트용 생수병을 트럭에 싣고 경기도 포천시 이동공장에서 부산까지 왕복하는 등의 일을 두세 차례 거듭하며 ‘생수병의 무사함’을 확인한 다음에야 생수병 경량화는 완성된다.
500㎖보다 생수병이 견뎌야 하는 무게가 큰 2ℓ짜리는 경량화 작업이 다소 늦어졌다. 2012년 37g이었던 2ℓ 페트병은 2013년 35.6g, 2019년 32.6g까지 무게를 낮출 수 있었다. 지금은 2ℓ 페트병 무게를 31.6g으로 줄이기 위해 준비 중이다. 내년부터 순차 적용할 계획이다.
김 부장은 “처음 초경량 캡을 적용했을 때 소비자들이 사용하기에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높이가 다른 제품보다 낮았기 때문”이라며 “손에 익지 않으니 떨어뜨린다거나 제대로 닫히지 않아서 물이 새는 소비자 불만이 접수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걸 개선하기 위해 무게 1.4g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손에 잘 잡히는 모양을 찾으려고 애썼다. 김 과장은 “그립감이 있는 제품을 찾기 위해 다양한 디자인을 적용하고 여러 번 바꿔가면서 지금의 모양을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풀무원샘물은 시장 점유율이 높지 않다. 하지만 선도적으로 플라스틱 저감 노력을 하는 기업으로 꼽힌다. 풀무원은 지난해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으로부터 식품기업으로 유일하게 5년 연속 통합 A+ 등급을 받았다. ‘ESG 우수기업 시상식’에서 950개 상장사 가운데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 부장은 “일찌감치 ‘지속가능한 경영’ 이념을 중심으로 임직원이 같은 가치를 공유했던 게 주효했다”고 강조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