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찾은 충북 청주시 광림교회 2층 정대위(33) 목사의 세 평 남짓한 사무실 책꽂이엔 환경 관련 책이 가득했다. 교회를 소개하며 환하게 웃는 정 목사 뒤로 벽엔 걸린 액자가 눈에 들어왔고 그 속엔 ‘청주모범시민상’ ‘청주시 환경대상 상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녹색교회 인증서’가 번쩍이고 있었다.
푸른 담쟁이 넝쿨로 덮여진 광림교회엔 풀 향기가 진동했다. 4일 창조절을 맞아 교회는 재활용품을 활용한 장식품으로 교회 곳곳을 꾸며 놓으며 하나님 창조질서의 회복을 염원하고 있었다. 교회 2층엔 종이박스 여러 개로 붙여 만든 포토존이 놓여 있었고, 계단 벽엔 초록 나뭇 잎으로 만든 장식품들이 걸려있었다.
정 목사가 광림교회에서 생태목회를 시작하게 된 건 기도의 응답이었다. 2020년 봄 갑자기 찾아온 코로나19는 만 31세 젊은 나이로 이제 막 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한 정 목사에게 많은 도전을 안겼다. 그는 “지방의 작은 교회에서 위기를 어떻게 이겨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며 “한국 교회가 손가락질 받고 있는데 우리 교회 만큼은 그러지 말자, 시대를 이끌어온 선배 신앙인들과 교회의 위대한 신앙을 회복하자는 마음을 가지고 한걸음 나가자고 기도했다”고 했다.
기도 응답은 뜻밖이었다. ‘쓰레기’였기 때문이다. 정 목사는 20여년 동안 고쳐지지 않던 교회 주변 쓰레기 불법 투기를 한달 만에 해결하면서 ‘환경’ ‘생태’ 목회에 본격적 관심을 갖게 됐다. “교회로 처음 이사 왔을 때 저 역시도 교회 주변에 쓰레기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보고 쓰레기를 버렸다”며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여름이 되고 주변 악취가 심해졌고 점점 이곳은 쓰레기 집합소가 돼갔다.
정 목사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나서기로 했다. 쓰레기 투기 지역의 지저분한 풀들을 제거하고 쓰레기 배출 금지 안내판과 현수막을 원고지 형식으로 게시하며 외국인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영어, 중국어로 표기했다. 또 사람들이 쓰레기를 가장 많이 버리는 시간에 4~5시간씩 지키고 서 있었다. 정 목사의 활약으로 한 달만에 문제는 해결됐다.
정 목사는 “교회 옆 쓰레기가 쌓인 것을 치웠을 뿐인데 청주시 ‘모범시민 표창’을 받았고 생태 목회자로서 마을을 변화시키는데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었다”며 “작은 실천으로 마을이 바뀌는 것을 경험하며 교회가 세상을 이끌어갈 소망이 돼 교회가 앞장서는 활동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청주시는 정 목사의 모범 사례를 공유하며 청주시 내 다른 불법 쓰레기 투기 지역 7곳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 정 목사는 “생명과 환경은 하나님 창조 질서의 보존이고, 기후위기 시대 종교를 넘어선 시대적 요청이기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광림교회가 가장 앞장서서 잘 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교회 주변 마을 쓰레기를 ‘0’으로 만들기 위해 정 목사는 쉽게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했다. 걷고 뛰면서 주변의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과 버려진 쓰레기나 재활용품을 활용해 새 제품을 만드는 가게를 운영하는 것이었다. 정 목사는 “교회 내 생명살림선교팀을 만들고 매주 지난해 8월부터 목요일마다 플로깅 활동을 진행하며 교인들은 함께 모여 쓰레기를 줍고 교제하며 환경에 대해 생각한다”고 전했다.
교회는 동네에서 배출되는 쓰레기와 사용이 끝난 물건을 재활용해 새 제품을 만든다. 정 목사는 지난해 8월 지역협동조합 ‘복대동사람들’ 출범에 앞장서며 마을의 플라스틱과 쓰레기 제로에 도전하고 있다. ‘복대동사람들’ 중점 사업 중 하나인 친환경 잡화점 ‘리케아’는 마을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리케아에선 버려진 옷장으로 블루투스 스피커를 만들고 일회용 수저를 모아 전등을 만든다. 정 목사는 “리케아 공방에선 쓰레기 배출이 ‘0’인 마을을 만들기 위해 지역 주민들과 어린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업사이클링 체험교육과 생태환경교육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녹색교회 비전을 가진 정 목사는 마을 정화에 그치지 않았다. 정 목사는 교회 주보를 만드는데 종이 대신 사탕수수 잔여물로 만든 사탕수수 복사지를 사용한다. 흔한 메모지도 버려진 과자 상자를 엮어 사용하고 찬양단 악보는 중고 태블릿 PC를 활용하며 교인들에게 삶으로 살아가는 ‘창조세계 보존’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교인들을 생태선교사로 교육시키기 위해 지역 YWCA에서 진행하는 ‘환경선교사’ 과정에 참여하도록 교인들에게 권장한다.
정 목사는 그의 생명, 환경 사역을 더 많은 교회가 함께하며 지방의 작은 교회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쓰레기 치우는 것으로 시작해 녹색교회가 돼 코로나 속에서도 교회는 꾸준히 부흥했어요. 지금 위기의 시대라고 하지만 한국 교회가 이 나라를 이끌어갈 새로운 기회입니다. 교회는 문화와 시대를 이끌어왔고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 시기에도 이 땅에 희망의 등불을 밝혔어요. 교회가 작은 것부터 세상 속에서 신뢰를 회복하고 하나님 영광을 나타낸다면 이 땅의 소망이 되는 교회로 거듭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할렐루야.”
청주=신지호 기자 p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