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문해력이 떨어졌다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크지만 MZ세대가 특별히 못 읽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체적인 문해력이 떨어졌다고 명확하게 보여주는 데이터도 없다. ‘요즘 애들이 가제(假題)를 랍스터라고 한대’라는 것은 생산적인 논의가 아니다. 문해력은 ‘요새 어른’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디지털 문해력을 언급하고 서점가에는 문해력 관련 책들이 쏟아지는 시대다. 뜨거운 문해력 담론에 기름을 부은 ‘심심한 사과’ 논란에 대해 듣기 위해 조병영 한양대 국어교육과 교수를 지난 7일 학교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해 문해력 열풍을 일으킨 EBS ‘당신의 문해력’ 기획과 자문을 맡았고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미국 피츠버그대 교수로 재직하며 현지 예비 영어 교사들을 가르쳤고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국가교육발전평가 개발에 참여했다. 지난해 ‘읽는 인간 리터러시를 경험하라’에 이어 출간을 앞둔 ‘읽었다는 착각’을 쓰는 등 문해력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돕는 데 적잖은 역할을 했다.
-‘깊고 간절한’을 뜻하는 심심(甚深)을 ‘지루하고 재미없게’로 오해한 ‘심심한 사과’가 사회적 쟁점이 됐다.
“여러 가지 비평과 의견이 나오는 건 긍정적이다. 어휘력 문제가 언급됐고 언어의 공공성, 세대 간의 언어 격차, 한자 교육의 필요성, 부족한 독서량 등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됐다. 그런데 하나의 관점으로는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심심하다’라는 단어 하나를 알고 모르고가 큰 문제가 아니라 태도, 공감, 인식과 모두 연결된 문제다. 종합적이고 맥락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비평은 쉽지만 교육은 어렵다.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생각하면 고민이 깊어진다. 이제는 교육의 논의로 옮겨가면 좋겠다.”
-문해력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그동안 문해력과 관련해 화제가 된 단어들을 묶어 ‘금일(今日) 심심한 사과를 드리면서 사흘(3일)간 무운(武運)을 빈다’는 문장이 만들어졌다.
“제2, 제3의 ‘심심한 사과’가 또 나올 수 있다. ‘심심한 사과’는 일차적으로 그 말을 몰라서 생긴 해프닝이지만 당사자들은 서비스 제공자가 소비자에게 그렇게 사과하면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그간 해왔던 대로 댓글을 달았을 것이다. 그들이 소통한 경험이 그런 방식으로 쌓여왔다는 증거다. 단어의 의미를 맥락에서 추론하라고 배웠을텐데 일상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었던 거다. 바로 반응하지 않고 한 번 멈춰서 문맥을 파악하고 상대를 이해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을 개입시키는 읽기가 별로 필요하지 않은 사회가, 그런 미디어 환경이 이런 현상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를 세대 간 언어 단절이나 세대 간 언어 교체 현상이라고 설명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문해력 논쟁이 세대 갈등을 부각시키는 것에 대한 우려도 크다.
“세대 간 언어가 다르다는 건 너무 자명하다. 쓰는 말, 방식, 맥락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자 세대는 요즘 애들이 한자를 모른다고 타박하고, 젊은 사람들은 한자 세대가 꼰대라고 비난하는 건 무의미하다. 젊은 세대도 언젠가 기성세대에 편입되고 그 구조 안에서 살아가려면 어른의 말을 알아야 한다. 어른도 젊은 세대와 소통하고 협력하려면 젊은 세대의 언어를 알아야 한다.”
-여러 매체의 ‘심심한 사과’ 기사에는 ‘한국인의 기본 문맹률은 1%이지만 실질 문맹률은 75%’라는 언급이 따라붙었다. 성인 4명 중 3명이 문장의 뜻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는 뜻인데, 사실인가.
“그 근거를 잘 모르겠다. 20여년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성인 문해 조사와 비슷한 방식으로 국내에서 별도 조사를 했더니 그런 결과가 나왔다는 데이터를 반복 인용하면서 그게 마치 팩트처럼 된 것 같다. 지난해 발표한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의 성인 문해능력조사 결과를 보면 거꾸로 성인의 79.8%가 일상생활에 충분한 문해력을 가지고 있다. 다만 정부의 문해력 조사는 기초 문해력을 본다. 중학교 3학년 수준을 제일 높은 수준으로 삼는다. 그 정도면 충분한가. 성인은 훨씬 정교하게 언어를 사용하는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능력이 필요하다.”
-OECD가 15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PISA) 결과를 보면 한국의 읽기 순위가 2006년 1위에서 2018년 9위로 꾸준히 내리막을 걷고 있다. MZ세대의 문해력이 떨어지는 것은 팩트 아닌가.
“한국은 여전히 상위권이지만 2000년 이후 7번 시행된 PISA 평균 점수가 매회 3.1점씩 우하향 곡선을 그렸다. 그렇다고 MZ세대의 문해력이 떨어졌다고 얘기할 수 없다.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우리 사회의 문해력은 계속 증진돼왔다. 데이터를 보면 가장 못 읽는 세대는 상대적으로 정규교육과 문해력 교육을 받지 못한 60대 이상이다.”
-문해력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평균 점수가 하락한 원인은 무엇인가.
“아이들이 전반적으로 못 읽는다기보다 정말 못 읽는 아이들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 상위권 학생들의 비율은 정체됐는데 하위권 학생들의 비율이 2000년 5.7%에서 2018년 15.1%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교육의 불평등과 관련이 깊다. 특히 우려할 만한 부분은 비판적 문해력이다. 사실과 의견 구별하기 문항에서 4명 중 1명만 정답을 맞췄다. 80개국 중에 거의 꼴찌 수준이었다. 전체 읽기 점수는 높은데 정보의 진위를 판별하거나 숨겨진 의미를 판단하지 못해 OECD 보고서에서도 독특한 경우라고 설명했다(그래프 참조).”
-학생들의 문해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해법은.
“하나는 하위권 학생들의 기초 문해력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가이고, 또 하나는 비판적 문해력, 즉 잘 읽는 아이들을 얼마나 더 깊게 읽을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가이다. OECD에서 비판적 문해력과 관련해 학생들에게 온라인에서 보는 정보가 주관적이고 편향될 수 있다는 걸 학교에서 배웠냐고 물었다. 한국 학생 45% 정도가 배운 적이 없다고 답했지만 엄연히 교육과정에 들어있다. 실생활에서 접할 법한 실제적인 자료로 배우지 않아서 학생들 기억에 남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문해력 교육은 실제성이 있어야 한다.”
-교육부가 발표한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에는 문해력 향상을 목표로 초등학교 1, 2학년의 국어 수업 시간을 34시간 늘리고 고등학교 선택과목으로 ‘문학과 영상’ ‘매체 의사소통’ 등 문해력 관련 과목을 신설하는 내용이 담겼다.
“지금 교과목에 독서와 작문이 있지만 이론을 가르치지 실제로 글 읽는 법과 글 쓰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문해력 수업을 만들어도 이론만 가르칠 가능성이 크다. 과목을 만들고 수업 시간을 늘려놓으면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건 근시안적이다. 교사가 바뀌어야 교육이 바뀐다. 교사가 다양한 수준의 아이들을 진단하고 그 수준에 맞게 문해 전략을 가르칠 수 있도록 역량과 전문성을 키워줘야 한다.”
-문해력에 대한 관심이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보나. 예컨대 교수님은 초등학생 문해력 사교육에 대한 우려를 여러 번 표명했지만 문해력을 검색하면 문제집부터 줄줄이 뜬다.
“문해력 이름을 달고 있는 많은 문제집이 대부분 옛날 국어나 독해 문제집을 제목만 바꾼 것이다. 학부모들이 문해력을 아이 성적 향상을 위한 도구로 보기 때문이다. 대중들도 문해력을 어휘력이나 독서력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더 넓은 스펙트럼을 설명하기 위해 저는 문해력 대신 리터러시(literacy)라는 말을 쓴다. 리터러시는 읽고 쓰고 생각하고 일하고 대화하고 협력하고 판단하는 방식으로, 좋은 삶을 살고 공동체에 기여하기 위한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새로운 문해력이다.”
-리터러시의 영역이 디지털 미디어 공간으로까지 넓어졌다. 비판적 문해력을 말했는데,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넘쳐나는 인터넷과 유튜브에서 필수적인 역량이다.
“읽지 않아도 검색하면 되고, 정보를 빨리 쉽게 피상적이고 단편적으로 취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반면 깊이 있는 정보를 찾기는 어렵다. 정보의 홍수 시대가 아니라 정보 결핍 시대다. 사람들은 진짜 자신에게 필요하고 가치 있는 정보를 찾는 걸 어려워한다. 중요한 정보와 객관적 사실을 찾고 이해하고 연결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읽는다는 걸 의식적, 성찰적 과정으로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hskw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