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시대 ‘숨통’… 3000원 청년식당·2500원 국밥 북적

입력 2022-09-14 00:04
13일 서울 종로구의 한 해장국집에서 손님이 식사를 하고 있다. 이곳은 손님이 몰리면 자리가 없어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합석을 하고는 한다.

13일 점심 무렵 서울 성북구 정릉시장의 한 식당 앞. 70대 남성 이모씨가 가게 입구를 서성였다. 실내로 들어선 뒤에도 그의 시선은 간판에 적힌 ‘청년’ 두 글자에 머물렀다. 이 식당은 형편이 어려워 끼니를 거르는 청년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세워진 곳이다. 2018년 한 사회적 협동조합에서 ‘청년들에게 디딤돌을 마련해 주자’는 취지로 문을 열었다.

이씨가 간판부터 청년을 내건 이 식당을 찾은 건 저렴한 밥값 때문이다. 이곳의 메뉴는 3000원짜리 김치찌개 한 가지다. 인근 연립주택의 반지하로 3개월 전 이사 온 이씨는 “가격이 싸다길래 민망함을 무릅쓰고 와봤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끼니를 라면으로 때운다는 그는 이날 모처럼 밥을 남길 정도로 푸짐한 식사를 했다. 그는 밝은 표정으로 “오랜만에 식사 같은 식사를 했다”고 했다. 과거 대구에서 철공소를 운영했던 그는 사업 실패 후 일자리라도 구하려 서울로 이사를 왔지만 여전히 기초생활수급자 처지다. 매달 10만원씩은 아직도 남은 빚을 갚는 데 빠져나간다.

성북구 일대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서순정(68)씨도 오전 일을 마치고 이 식당에서 한 끼를 해결했다. 서씨 역시 처음에는 간판에 들어간 ‘청년’ 때문에 주저했지만 근래에는 젊은이들 못지않게 이곳을 애용하고 있다. 취업 준비로 주머니 사정이 빠듯한 대학교 4학년 안모(25)씨도 청년 식당을 찾았다. 그는 “요새는 학생식당도 5000원씩 하다 보니 이쪽을 더 애용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 식당을 찾는 손님들은 올해 들어 하루 150명 수준으로 늘어났다. 협동조합 관계자는 “‘가난한 청년들을 위한 식당’이라고 못 박는 것보다 지금처럼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이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에 있는 한 ‘2500원짜리 국밥집’도 오전부터 테이블 8개가 전부 차 처음 보는 사람끼리도 합석해야 할 정도로 붐볐다. 이곳은 고(故) 송해씨의 단골 식당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국밥집도 2500원짜리 우거지해장국 한 가지가 메뉴의 전부다. 손님이 자리에 앉으면 따로 주문이 없어도 해장국과 깍두기가 인원수에 맞게 식탁 위로 올려진다.

은퇴 후 혼자 사는 김모(89)씨는 매주 한 번씩은 지하철을 타고 와서 이 해장국을 먹는다. “1만원 아래로 하루 식비를 해결한다”는 그는 “이런 식당 덕분에 숨통이 트인다”며 웃음을 지었다. 김씨는 예전에 무료급식소도 종종 방문했었지만 이 식당이 더 편하다고 했다. 그는 “무료급식소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만큼 내 주머니 사정이 나쁘지는 않다”며 ‘공짜 밥’에 대한 민망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20년 단골을 자처한 노모(83)씨는 지난 이틀 사이에만 세 차례 이 식당을 찾았다. 항상 해장국 한 그릇에 막걸리 한 병을 곁들여 5500원을 낸다는 그는 “이런 가게가 아니면 밖에서 매일 먹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서울 강서구에서 매일 50분 거리를 지하철을 타고 오간다.

2500원 국밥집 역시 고물가 아우성이 높아지면서 점차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손님이 늘어났다. 식당 주인 김형진(65)씨는 “국밥집이다 보니 여름에는 보통 손님이 줄어드는데, 올여름에는 하루 500명 넘게 찾아왔다”며 “이번 추석에는 명절 때 드물던 가족 단위 손님도 몰려서 가게 바깥에도 자리를 펴고 장사를 했다”고 말했다.

글·사진=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