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재정 기조를 내세운 정부가 예비타당성(예타) 제도 개편과 재정준칙 법제화로 허리띠를 졸라맨다. 기준이 불명확한 예타 조건은 구체화해 ‘깜깜이’ 면제 사업을 최소화하는 한편, 재정 안정성 확보를 위한 재정준칙은 연내 법제화해 2024년 예산안부터 적용할 계획이다.
정부는 13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고 불명확한 예타 면제 요건을 구체화하는 동시에 최대한 엄격하게 적용하기로 했다. 예타 면제는 문재인정부(149건·120조1000억원)에서 이명박정부(90건·61조1000억원)와 박근혜정부(94건·25조원) 시기보다 크게 늘었다.
정부는 깐깐한 예타 적용을 위해 현행 예타 면제 대상인 문화재 복원 사업, 국방 관련 사업, 남북교류협력 사업, 재난복구 지원 사업, 지역균형발전 사업 등 5개 분야의 예타 면제 요건을 구체화한다. 지금까지 남북교류협력 또는 국가 간 협약·조약에 따라 추진하는 사업이 모두 예타 면제 대상이었다면, 앞으로는 남북교류협력 추진협의회 의결을 받거나 대통령 재가 또는 국회 동의를 받은 사업에 한해서만 예타를 면제하는 식이다.
대규모 복지사업은 시범사업 실시 여부를 검토한 뒤 시범사업이 필요한 경우 성과 평가를 토대로 본 사업에 대한 예타 여부를 결정한다. 2009년부터 예타를 실시한 12개 복지사업 중 9개 사업은 시범사업 없이 예타를 신청했다. 지난해 추진된 영아 수당 사업(7조5000억원), 첫 만남 이용권 사업(2조5000억원)이 대표적이다.
23년째 그대로인 예타 대상 기준도 사회간접자본(SOC)·연구개발(R&D) 사업은 총사업비 500억원에서 1000억원(국비 300억→500억원)으로 상향조정한다.
국가채무 증가 속도를 늦추기 위한 재정준칙 법제화도 추진된다. 관리재정수지를 -3% 한도 내에서 관리하는 게 핵심이다. 국가채무 비율이 60%를 초과할 경우에는 관리재정수지 -2%로 관리 한도를 축소한다. 한도 기준은 재정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5년마다 재검토하기로 했다. 다만 전쟁, 대규모 재해, 경기 침체 등 예외 상황에서는 일시적으로 재정준칙 적용을 면제하기로 했다. 예외 사유가 사라진 이후 편성하는 본예산안부터는 준칙을 다시 적용하고, 재정건전성을 다시 제고할 만한 재정건전화대책 수립도 함께 의무화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의원입법 형태로 제출해 기존 정부안과 병행 심사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여당 시절부터 ‘확장재정’을 강조해 온 더불어민주당이 의석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법안 통과 여부는 장담하기 어렵다. 추 부총리는 “재정준칙은 전세계 105개국에서 도입 중이며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중에서는 한국과 튀르키예를 제외한 모든 국가가 도입하고 있다”며 “하루빨리 재정준칙을 법제화해 건전재정의 기틀을 확고히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세종=권민지 신재희 기자 10000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