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에미상 여섯 부문을 휩쓸었다. 미국 방송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이 상의 74년 역사상 비영어권 드라마가 수상하기는 처음이다. 그것도 감독상과 남우주연상 같은 굵직한 부문의 수상작으로 선정되며 뛰어난 작품성을 과시했다. 아카데미상 4관왕을 차지한 영화 ‘기생충’에 이어 자막의 장벽을 다시 허물어냈다. 이로써 미국 문화계 4대 시상식 가운데 아카데미상(영화)과 에미상(방송)이 차례로 K콘텐츠의 무대가 됐다. 그래미상(대중음악)도 K팝이 성큼 다가섰다. 일이십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지난해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킨 ‘오징어 게임’은 한류 현상을 K콘텐츠 전반으로 더욱 확산시키는 촉매 역할을 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최근 ‘K-Everything(모든 것)의 시대’라는 말로 이런 현상을 규정하며 패션, 음식, 순수예술 등 다양한 영역에서 발휘되는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조명했다. 문화 콘텐츠는 우리가 계속 가꿔가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오징어 게임’의 쾌거에 박수를 보낸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매력은 독창성에 있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줄거리가 반복 재생산되는 흥행 공식에서 벗어나 우리 현실을 예리하게 반영한 시각이 세상에 없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사회적 격차와 갈등을 스크린에 옮겨낸 ‘기생충’도 다르지 않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수사는 이제 진부하다. 한국적인 소재여서 통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이야기로 빚어내는 독창적인 시선이 매력을 발산하는 것이다. ‘기생충’이 나온 지 3년, ‘오징어 게임’은 1년이 지났다. 그사이 많은 자본이 한국에 찾아왔고 많은 작품이 만들어졌다. 아쉽게도 두 작품의 뒤를 잇는 이렇다 할 이야기가 보이지 않았다. 자본의 논리에 K콘텐츠의 독창성이 희석되고 있다는 말이 벌써 들린다. 틀에 얽매이지 않도록 과감한 상상력을 북돋는 창작 생태계를 구축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