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 아들을 둔 설모(47)씨는 최근 아이가 보고 있는 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의 리얼리티 예능프로그램을 보다가 화들짝 놀랐다. 출연자들의 음주와 흡연 장면이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매 회차 등장했기 때문이다. 같은 플랫폼의 자체 제작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 담배를 피우거나 다리 위에서 자살을 시도하려는 모습도 나온다. 이런 장면들은 지상파 방송이었다면 모두 삭제되거나 모자이크 등 편집을 해야 방영될 수 있는 것들이다.
설씨는 12일 “아이가 해당 프로그램에 나오는 출연진이 입은 옷을 사달라고 할 정도로 영향을 많이 받는데, 혹여나 음주·흡연 모습을 모방하진 않을까 걱정된다”며 “OTT에서는 15세 이상 시청 가능 프로그램에서도 이런 장면들이 여과 없이 나와서 아예 구독을 끊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넷플릭스나 웨이브, 티빙 등 국내외 OTT가 기존의 TV 방송 시장을 잠식하면서 영상물의 ‘심의 기준’을 두고 시청자들의 혼란과 불만도 커지고 있다. OTT 플랫폼은 인터넷망을 활용한 동영상 서비스로, 휴대전화나 PC는 물론이고 인터넷과 연결된 TV로도 시청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기존 TV 방송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OTT에서는 음주, 흡연, 폭행 등 자극적인 장면이 여과 없이 방송된다. 일반 방송과 OTT는 적용되는 법이 달라 심의 잣대 자체도 다르기 때문이다. TV 방송은 ‘방송법’을 적용받아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을 따른다. 이 규정은 반말 또는 음주, 욕설, 성적 언행 등의 표현을 규제하고 음주, 흡연, 사행 행위 등을 미화하거나 조장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위반할 경우 사업자는 방송 재승인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반면 OTT와 같은 디지털 플랫폼은 ‘정보통신망법’ 적용을 받아 통신심의 대상이 된다. 통신심의는 유해 사이트나 불법 정보 유통 등에 관해서만 제한적으로 적용될 뿐이어서 방송법에 비해 규제가 상대적으로 덜하다. 방송·통신 심의 담당 기관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계자는 “흡연 장면은 불법 정보가 아니기 때문에 통신 심의 규정에 따라 차단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고 말했다.
OTT 앱 내에서 자체적으로 연령 제한 기능을 두고 있지만, 시청자 개개인이 설정하는 기능에 불과해 사실상 강제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시청자는 “특히 인터넷에 익숙한 아이들이 무방비로 유해한 장면들에 노출된다”며 디지털 플랫폼의 심의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반면 OTT 업계는 오히려 규제 완화를 요구한다.
관련 법제를 담당하는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OTT 콘텐츠는 방송과 다르게 시청자가 선택해서 보는 것이기 때문에 심의 규정이 완화되는 게 맞는다는 입장과 방송을 대체하는 미디어인 만큼 엄격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이 맞서는 상황”이라며 “여러 측면을 고려해 미디어 간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법제 마련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