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정(64)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 대표는 국내 개인투자자 5만여명이 소속된 '동학개미' 단체를 이끄는 인물이다. 지난 7월 한국투자증권의 공매도 위반 사태를 계기로 정부의 불법 공매도 개선책을 끌어내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 대표는 최근 발표된 정부의 공매도 개혁안에 대해 "낙제점에 가깝다고 본다. 개혁을 요구했는데 개악을 한 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공매도 담보비율을 개인·외국인·기관투자자 모두 130%로 통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사에 다니던 정 대표는 2018년 삼성증권 유령주식 사태를 계기로 소액주주 운동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지난 8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한투연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소액주주 운동의 한계와 앞으로의 활동 계획 등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소액주주 운동을 시작한 계기는.
“시작은 ‘왜 개인투자자 십중팔구는 주식으로 손해를 볼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했다. 살펴보니 개인의 실력 탓도 크지만 주식시장을 둘러싼 제반 환경이 개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그런 고민을 하던 중에 삼성증권이 112조원 규모의 주식을 허위로 발행하고 임직원이 이를 팔아치우는 유령주식 사태가 터졌다. 이를 계기로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 비영리단체를 설립하게 됐다.”
-해외 사례를 벤치마킹해 만들었나.
“비슷한 단체로는 미국의 전미개인투자자협회(AAII)가 있다. 하지만 이곳은 개인투자자에게 포트폴리오 제언, 금융·증권 교육 등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라 우리와는 결이 다르다. 순전히 소액주주 권리 신장을 위해 모인 단체는 한투연이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투연 활동 중 기억에 남는 사례는.
“지난해 벌였던 ‘K-스톱’ 운동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미국에서 진행됐던 ‘게임스탑 사태’를 모방해 실행했던 공매도 방해 운동이다. 당시 많은 회원들이 참여해준 덕분에 타깃 종목인 에이치엘비 주가가 장중 21% 상승하는 등 성과를 냈다. 이후 금융당국에서 이 운동이 자본시장법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엄포를 놓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던 사건이다.”
-결국 공매도 이슈와 관련해 정부 대책이 나왔는데.
“공매도 세력이라는 거대한 집단에 맞서 지난 3년간 노력해온 만큼 감개가 무량하다. 그간 금융위원회 앞에서 격렬한 시위, 집회를 이어간 보람이 이제야 나타난 듯하다.”
-지난 7월 발표된 정부의 공매도 개혁안에 대한 평가는.
“현재 발표된 정부 대책은 낙제점에 가깝다고 본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한투연이 제출했던 8대 개혁안이 대부분 반영되지 않아 실망스럽다. 외국인과 기관의 공매도 진입장벽을 높여 무분별한 공매도를 막아야 하는데 정부는 되레 개인의 공매도 시장 참여를 부추기려 하고 있다. 정보비대칭이 극심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이런 정책을 펴면 개인투자자 피해가 확대될 수 있다. 한마디로 개혁을 요구했는데 개악을 한 꼴이다.”
-공매도 개혁안에서 보완해야 할 점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두 가지는 반드시 개혁해야 한다. 일본처럼 공매도 담보비율을 개인·외국인·기관투자자 모두 130%로 통일해야 한다. 이런 공정한 룰에 반대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개인투자자들의 가장 큰 불만인 공매도 상환 기간 또한 90일 또는 120일로 정하고 상환 후 1개월 동안은 동일 종목에 대한 재공매도를 금지한다면 무분별한 공매도로 인한 피해가 상당 부분 줄어들 것으로 생각된다.”
-공매도 개선 말고 진행 중인 활동은.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2년 유예와 이사충실의무 관련 상법 개정을 위해 힘쓰고 있다. 금융투자소득세가 충분한 안전장치 없이 도입될 경우 소위 말하는 시장의 큰 손들이 이탈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는 유동성 저하로 이어져 안 그래도 하락세인 시장이 더 침체될 것으로 우려된다.”
-상법 개정안은 어떤 내용인가.
“현재 상법 382조 3항을 보면 상장회사의 이사가 특정 행동으로 인해 주주들에게 피해를 줘도 그것이 회사를 위한 것이었다고 인정되면 제재를 받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의 개정안은 해당 조항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추가해 소액주주들도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도록 한다.”
-소액주주 단체들이 모여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의 시장참여율이 높아지면서 그들이 더 이상 참지 않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다. 현재 18개 종목 주주연대 대표들이 한투연을 중심으로 모여 활동하고 있는데, 앞으로 보다 많은 종목 주주들이 뭉쳐 목소리를 더 크게 낼 수 있었으면 한다.”
-소액주주 활동을 하면서 힘든 점은.
“늘어나는 회원 수에 비해 적극적으로 활동에 나서는 분들이 적다는 게 고민이다. 특히 집회나 시위의 경우 외형적으로 참가자가 많아야 힘을 얻는 법인데 그러지 못한 경우가 많아 아쉽다. ‘나부터 나서야 세상이 바뀐다’는 마음으로 주주들이 힘을 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앞으로 어떻게 활동할 계획인가.
“뜻이 맞는 국회의원들에게 꾸준히 자본시장 개선안을 건의하고 서한을 보내는 등 정치권과 적극적으로 소통해보려 한다. 올해 들어 10차례 이상 다수 국회의원들에게 서한을 발송했는데 피드백이 나쁘지 않았다. 1400만 개인투자자들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게 되는 그 날까지 열심히 달려보겠다.”
김지훈 임송수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