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추석 연휴 전날인 지난 8일 “절대 핵무기를 먼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통일부가 남북이산가족상봉을 제안한 날이었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첫 대북제안이었던 이산가족상봉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이 없었다. 한국정부의 공식적인 대화제안을 아예 무시한 것이다. 민족의 최대명절인 추석을 앞두고 인도주의적인 차원의 이산가족상봉을 제안한 통일부로서는 머쓱해졌다. 윤 대통령 임기 동안 남북관계가 겉돌 것이라는 예상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김 위원장의 선언은 북한 지도부가 공격을 받을 경우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북한은 아예 김 위원장의 이 선언을 최고인민회의 법령으로 명문화했다. 핵무기 사용의 가이드라인을 법제화한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 사용 법제화는 지난 3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이어 한반도 정세를 더욱 대결국면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개탄스러운 일이다.
북한의 핵무기 사용 법제화는 윤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도 차질을 빚게 만든다. 윤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 밝힌 담대한 구상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식량공급과 전력 및 항만 인프라 구축 등을 통한 경제적 지원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절대로 핵무기를 먼저 포기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담대한 구상의 전제조건인 비핵화를 부정한 것이다.
북한의 이런 반응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긴 하다. 북한은 윤 대통령의 8·15 경축사 직후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담화를 통해 윤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을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맹비난했다. 북한이 핵무기 법제화까지 공표하면서 남북대화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다. 북한이 조만간 7차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군사적 긴장은 더욱 고조될 것이다.
윤석열정부의 대북정책기조가 한·미동맹 강화를 바탕으로 한 대북 억지력 강화에 있다는 걸 감안하면 독자적으로 남북대화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정부의 첫 대북제안이 메아리없는 이산가족상봉에 그친 건 아쉽다. 좀더 창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