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현지시간) 96세로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하나님을 신뢰했던 사람이었다고 미국 크리스채너티투데이(CT)가 보도했다. 여왕은 영국 국교회의 대표로서 그 역할에 충실했으며 재위 기간 공적인 활동에서도 신앙을 나타냈다. 여왕 사후엔 식민 지배 잔재를 청산하고 더 근본적인 기독교 정신에 따라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2일 CT에 따르면 여왕은 생전에 자신의 신앙을 자주 언급했다. 그녀는 1952년 성탄 메시지를 전하면서 국민에게 이듬해 열리는 자신의 대관식을 위해 기도를 부탁했다. 여왕은 “여러분의 종교가 무엇이든지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기를 요청하고 싶다”며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국가를 위한 엄숙한 약속을 실행하도록 힘을 주시기를 기도해달라. 인생 모든 날에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길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고 말했다.
이 같은 기도 요청은 여왕의 부친인 조지 6세가 폐암으로 사망하면서 갑작스럽게 여왕에 즉위하자 신앙에 더 의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CT는 그해 크리스마스 이후 70년 이상 세계에서 가장 인정받고 추앙받는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서 여왕은 자신의 기독교 신앙을 개인적이면서도 공적인 영역에서 포괄적인 방식으로 보여주었다고 보도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신앙의 수호자’이자 영국 국교회의 ‘최고 총독’으로서 종교적 책임을 다해 왔다. 이 칭호는 1534년 헨리 8세가 교황과 결별하면서 발표한 수장령 이후 이어진 영국 군주에게 부여돼 왔다. 여왕의 임무에는 총리의 조언에 따라 대주교와 주교, 영국 국교회 학장 임명권도 포함된다. 1970년엔 군주로서는 처음으로 성공회 총회에 직접 참석해 연설하기도 했다.
여왕의 신앙은 역사적 전통에 따른 산물 그 이상이었던 것으로 평가 받는다. 세인트앤드루대 신학대학원 이안 브래들리 교수는 CT와의 인터뷰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20세기와 21세기, 근대성과 포스트모더니티를 이으며 자신이 견뎌낸 공적, 사적 폭풍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개인적 믿음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그녀의 닻으로 여겼다”며 “마지막까지 충실하게 살면서 자신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섬겼다”고 평가했다.
여왕은 2002년 여동생 마거릿과 모친의 죽음으로 고통스러운 한 해를 보낼 때는 자신의 신앙으로 어떻게 고통을 극복했는지 밝혔다. 그녀는 그해 성탄절 메시지에서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내가 기독교 신앙을 얼마나 의존하는지 알고 있다. 하루하루 새로운 시작이다.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주어진 하루에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인생을 사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여왕은 미국의 빌리 그레이엄 목사와 절친이기도 했다. 그레이엄 목사는 그의 자서전 ‘Just As I Am(내 모습 이대로)’에서 성경에 대한 여왕의 사랑, 그녀의 기독교 신앙의 강력함과 깊이를 언급하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952년부터 70년간, 군림하지만 통치하지 않는 군주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며 전 세계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왔다. 하지만 재위 70년은 영국 식민지 시대의 연장선이기도 했다.
기독교계에서는 여왕의 별세를 계기로 식민 잔재는 막을 내려야 하며 착취와 지배로 유익을 얻었던 이들이 용서를 구하고, 서로를 동등하게 여기며 존중하는 시대를 열어야 할 것이라는 제안이 나온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