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뎃’ 5년 강제·충전 단자 통일… 유럽, 스마트폰 규제 나선 까닭

입력 2022-09-13 04:03

유럽연합(EU)이 스마트폰 업데이트를 최소 5년간 강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환경보호를 위해 스마트폰을 오래 써야 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면에 다른 이유가 도사린다. 스마트폰 시장에 유럽 업체는 전혀 없는 상황에서 강력한 규제를 휘둘러 기업들을 압박하겠다는 의도가 깔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12일 IT매체 아르스테니카 등 외신에 따르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휴대전화, 무선 전화 및 태블릿PC에 대한 에코디자인 요구사항’ 초안 규정을 지난달 31일 발표했다. 이후 공청회 등을 거쳐 내년 말 최종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스마트폰을 최소 5년 이상 사용할 수 있도록 제조업체가 다양한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보안 업데이트는 최소 5년 이상 제공해야 한다. 기능 업데이트는 3년 이상 지속해야 한다. 업데이트 발표 이후 늦어도 2개월 안에는 사용자에게 배포를 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애플과 삼성전자를 제외한 다른 스마트폰 업체들엔 부담스러운 규제가 될 수 있다. 애플은 이미 5년 이상 운영체제(OS) 업데이트를 제공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OS 업데이트 4회, 보안 업데이트 5년을 약속하고 있다. 이 규제가 확정되면 중국 내수 시장을 제외하면 유럽에서 가장 판매량이 많은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은 OS 업데이트 정책을 대대적으로 수정해야 할 수도 있다.

업데이트 이후에 배터리 성능이 떨어지면 안 된다. 과거 애플이 OS 업데이트 이후 구형 모델에 대해 인위적으로 성능을 저하한 ‘배터리게이트’ 사건이 있었던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또 EU 지역에서 판매되는 스마트폰의 경우 수리가 쉽도록 배터리, 디스플레이, 카메라, 충전 포트 등을 포함한 예비 부품을 최소 5년간 쓸 수 있어야 한다.

EC가 기간을 5년으로 설정한 건 과거와 달리 오랜 기간 스마트폰을 써도 사용하기에 큰 무리가 없음에도, 스마트폰을 자주 교체하는 일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EC는 “스마트폰을 조기에 교체하는 경우가 많고, 수명이 다한 스마트폰이 재사용되거나 재활용되지 않아 자원 낭비를 초래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EC에 따르면 스마트폰 수명을 2~3년에서 5년으로 연장하면 도로에서 자동차 500만대를 줄이는 것과 같은 환경보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앞서 EC는 스마트폰 충전 규격을 USB-C로 의무화하는 법안을 추진했다. 제각각 다른 충전 규격 때문에 불필요한 케이블 중복이 생기고, 환경오염으로 이어진다는 취지다. 전 세계 스마트폰 업체 중 애플만 자체 규격인 ‘라이트닝’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애플을 겨냥한 규제다.

스마트폰 이전에는 핀란드 기업인 노키아가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40%가량을 차지하며 독보적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스마트폰 대응에 늦으면서 유럽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애플이 각각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 시장 공략이 힘든 샤오미, 오포, 비보 등 중국 업체도 유럽 시장을 프리미엄 공략 거점으로 삼고 있다. 유럽에서 눈에 띄는 스마트폰 제조업체가 없는 상황에서 강력한 규제로 소비자 권익을 지키는 쪽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해석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친환경, 탄소중립은 모든 산업에서 필수 요소가 되고 있다. 규제 장벽에 선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