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8일 북한에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 당국 간 회담을 전격 제안한 것은 인도주의적 제안을 통해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북한이 윤석열정부의 대북정책 로드맵 ‘담대한 구상’을 수용하지 않자, 정부가 북핵 문제 등 당장 해법을 찾기 어려운 정치·안보 의제 대신에 ‘이산가족 문제 해결’ 카드를 제시했다는 설명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이날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윤석열정부 대북정책의 가장 큰 특징은 정치적 사안과 인도적 사안을 확실히 분리해서 가겠다는 것”이라며 “북한이 핵실험 징후를 내비치고, 남한을 거칠게 비판하는 등 강경 기조를 유지하는 상황에서도 인도적 측면에선 대화를 하겠다는 원칙을 밝혔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우리 정부의 제안을 수용해 남북 간 회담이 성사된다면 경색된 남북 관계를 반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북한이 실제로 호응할 가능성은 작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한·미가 연합훈련을 대규모로 실시하는 등 북핵 공조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북한은 이번 제안에 대해 이중적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며 “이산가족 상봉은 인도주의적 사안이기 때문에 북한도 거부하기보다는 침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의 이번 제의는 이산가족 노령화로 생존자가 줄어들어 상봉이 가능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판단도 반영됐다. 통일부에 따르면 올해 들어 8월까지 사망한 이산가족찾기 신청자만 2504명에 이른다.
8월 말 기준으로 집계된 이산가족찾기 신청자는 총 13만3654명이지만, 이 중 생존자는 4만3746명에 불과하다. 생존한 신청자 가운데 90세 이상이 29.4%, 80세 이상이 37.0%로 약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2018년 8월 이후로 중단됐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4년 넘게 재개되지 않고 있다. 남북 관계 경색과 코로나19 등의 여파로 생사 확인·서신 교환과 같은 최소한의 교류마저 사실상 끊긴 상태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