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유행 초기 경영상 위기를 이유로 집단해고된 중국 국영 동방항공의 한국인 승무원 70명이 “해고가 위법하다”며 낸 소송 1심에서 8일 승소했다. 심리를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재판장 정봉기)는 “해고 처분은 무효”라며 “동방항공은 미지급 임금 총 35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동방항공은 코로나19 사태 초기인 2020년 3월 9일 계약직으로 입사해 2년간 일한 14기 한국인 승무원 전원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계약 만료를 단 이틀 앞둔 시점이었다. 이미 두 차례 근로계약서를 갱신했고, 해고 직전까지도 신규 항공기 교육·훈련을 받았던 터라 당사자들은 해고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2019년 12월 동방항공의 한국인 승무원은 210여명이었는데 정규직 계약 갱신을 앞둔 14기 막내 기수 73명만 일방적으로 해고됐다.
14기 승무원 70명은 “정규직으로의 계약 갱신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될 수 있는데도 합리적 이유 없이 거절됐다”며 2020년 4월 소송을 제기했다. 동방항공은 “코로나19로 전 세계 항공 수요가 급감했고, 한·중 노선 투입을 위해 원고들을 채용했으나 이 노선 운항편도 줄어든 상태였다”고 맞섰다.
2년6개월간 이어진 재판 도중 재판장은 3번 바뀌었다. 마지막 재판부의 재판장은 변론을 재개하며 동방항공에 “아무리 코로나19 유행기였다 해도 한국 국적이 아닌 외국 국적의 승무원들은 한 사람도 해고가 안 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실제 일본·이탈리아 등 다른 국적 승무원들은 감원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동방항공에 ‘김천 시립교향악단 사건’ 대법원 판시에 비춰 소명을 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계약직 단원 26명이 “김천시가 2년마다 계속해 온 기간제 근로자들과의 재계약을 갑자기 거부했다”며 낸 해고 무효 확인 소송이다. 원심은 원고 패소 판결했지만 대법원은 대규모 재계약 갱신 거절은 일반적 갱신 거절보다 사용자가 그 사유를 더 엄격하게 증명해야 한다며 파기 환송했다.
동방항공 사건 재판부는 이날 “원고들에게는 근로계약 갱신 기대권이 인정된다”고 했고, 한국인 승무원만 계약 갱신을 거절한 것은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선고 직후 방청석에서는 승무원들의 울음이 터져 나왔다. 대표 원고인 오혜성씨는 “저를 포함한 수많은 동기 승무원들은 해고 후 새로운 직업을 찾아 헤매야 했고 고통은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며 “동방항공은 이번 판결을 엄중히 받아들이고 짓밟힌 저희의 꿈을 지금이라도 되찾아주길 촉구한다”고 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