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도로 ‘윤핵관’ 비대위 공식 출범… 이런 코미디도 없다

입력 2022-09-09 04:02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내정된 정진석 국회부의장이 8일 오전 국회로 출근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힘이 8일 전국위원회를 열어 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고 정진석 국회부의장을 위원장으로 임명하는 안건을 압도적 찬성으로 의결했다. 법원이 주호영 전 비대위원장에 대한 직무정지 결정을 한 지 13일 만에 새 비대위 출범 채비를 갖춘 셈이다. 국민의힘은 추석 연휴 직후 상임전국위를 열고 정 위원장이 추천한 비대위원들을 임명해 비대위 체제를 본격 가동할 계획이지만 앞날은 불투명하다.

정 위원장은 “당을 안정시키는 것이 일차적인 임무”라고 밝혔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당 균열의 근본 원인이 소위 ‘윤핵관’과 이준석 전 대표를 두 축으로 한 권력 다툼인데 정 위원장은 갈등을 조정할 적임자라고 하기 어렵다. 그는 대표적인 친윤 인사로 꼽히는 데다 이 전 대표의 우크라이나 출국 등을 놓고 날 선 설전을 벌여 당내 갈등이 본격화되는 단초를 제공했었다. 권성동 원내대표가 이날 원내대표직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이 전 대표 측 인사들은 정진석 비대위가 ‘도로 윤핵관 비대위’라며 강한 불신을 표출하고 있다. 국회의장 부재 시 의사 진행을 해야 할 국회부의장이 여당 비대위원장을 맡는 게 상식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전 대표가 곧장 서울남부지법에 정 위원장의 직무 집행과 전국위 의결 등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해 새 비대위의 운명도 사법부의 판단에 맡겨지게 됐다. 국민의힘은 비대위 전환 요건을 구체적으로 손질한 당헌·당규 개정을 거쳤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게 없다고 주장하지만 예단하는 건 섣부르다. ‘비상 상황’에 대한 판단이 다를 수 있어 가처분 신청 인용으로 정진석 비대위가 무산되는 경우를 배제할 수 없다. 법원의 결정이 어떻게 나오든 집권 여당이 당 지도부의 운명을 사법부의 손에 맡기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블랙 코미디나 마찬가지다.

국내외 경제 여건 악화로 민생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고, 외교안보 상황도 만만치 않다. 국정 운영을 뒷받침해야 할 집권당이 쇄신과 혁신을 해도 모자랄 판에 내분에 빠져 여전히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하고 암담한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