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물에 그 밥, 정치가 늙었어요”… 기득권 정치 질타

입력 2022-09-09 04:04

윤석열정부가 출범한 지 불과 넉 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정치권은 이미 전쟁터가 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한 검찰·경찰의 수사와 이에 맞선 야당의 윤석열 대통령 고발과 김건희 여사 특검법 발의로 여의도에서는 여야 간 난타전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추석을 맞는 2030세대는 정치권에 ‘민생 챙기기’와 ‘협치’를 간절히 요청했다. 이들은 제발 정쟁을 멈추고, 자신들을 옭아매는 ‘미친 집값’과 ‘미친 물가’를 잡아줄 것을 호소했다. 특히 ‘협치’에 대한 2030세대들의 요구는 상당히 거셌다.

국민일보는 추석을 앞두고 지난 6~8일 전국 2030세대 50명과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2030세대는 민생문제 해결과 협치를 정치권에 강력하게 주문했다.

경북에 사는 직장인 이연화(30·여)씨는 “정치인들이 만날 싸우는 걸 보면 마치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자기들끼리 시트콤을 찍고 있는 것 같다”며 “국민 눈치를 보는 시늉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회사에 다니는 강세영(38·여)씨도 “정치인들이 이제 좀 그만 싸우고 민생 문제에 집중했으면 좋겠다”며 “말로는 협치한다고 해놓고, 허구한 날 밥그릇 싸움만 하는 모습이 이젠 지겹다”고 토로했다.

20대 취업준비생 박민주씨는 “잘못을 지적하면 ‘너도 똑같이 하지 않았느냐’면서 논점을 흐리는 전개에 신물이 날 정도”라며 “윤석열정부도 이제는 ‘이런 건 잘못했다’고 대범하게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동산 가격 안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경기도에 사는 직장인 박모(27)씨는 윤석열정부를 향해 “제발 집값 좀 낮춰 달라”면서 “우리 세대도 결혼하면서 집을 좀 가질 수 있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서울에 사는 주부 정모(29)씨 역시 “젊은 사람들이 집 때문에 불안하지 않게 해 달라”며 “집값이 떨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지난 정부에서 집값이 너무 올라 과연 집을 가질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까 싶다”고 하소연했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30대 직장인 조모씨는 “기름값도 환율도 물가도 미친 듯이 올라서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텨내고 있다”면서 “물가를 잡아주지 않으면 국민 인내심이 금방 바닥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30세대 다수는 이번 추석 밥상 화제로 ‘국민의힘 내홍’이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송준호(38)씨는 “국민의힘 내홍의 본질은 이준석이라는 젊은 정치인과 구세대 정치인의 대립”이라며 “우리나라의 세대 갈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한 상징적 사건이라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광주에 사는 직장인 김승호(26)씨는 “집권 여당 상황이 얼마나 더 엉망진창이 될지 궁금하다”고 비꼬았고, 울산에 사는 직장인 임모(28)씨도 “당 내부 문제도 정리 못 하는 정당이 대통령 취임 첫해의 여당 모습이 맞나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최근 여야 정쟁의 핵으로 떠오른 ‘검찰의 이재명 대표 수사’와 ‘김건희 특검법’도 추석 연휴 입길에 오를 것으로 예상한 2030세대들도 많았다.


경기도에 사는 직장인 김동호(37)씨는 "'이재명 사법리스크'를 감싸려고 똘똘 뭉치는 야당 모습이 국민 눈에 좋게 보일 리 없다"며 "친척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에 사는 취업준비생 강수민(30)씨는 "대선 전부터 김 여사를 향한 의혹이 한둘이 아니었다"며 "윤석열정부를 향해 쌓인 불만이 '김건희 특검법' 처리 과정을 계기로 폭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추석 연휴 때 정치 얘기를 아예 꺼내지 않겠다는 냉소적 답변도 적잖았다.

2030세대는 출범 4개월을 맞은 윤석열정부와 민주당 모두에 저조한 성적을 매겼다. '10점 만점으로 평가해 달라'는 요청에 응답자 50명은 윤석열정부에 평균 2.8점이라는 박한 점수를 줬다. 민주당이 50명으로부터 받은 평균 점수도 10점 만점에 3.0점에 불과했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안성준(33)씨는 "거대 담론은 사라지고 특정한 정치인을 위한 정치가 돼 가는 느낌"이라며 "성장이든 분배든 사회통합이든 정치권이 젊은 사람들에게 비전을 제시해 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윤석열정부가 가장 잘한 점으로는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이, 가장 못한 점으로는 인사문제가 각각 꼽혔다. 민주당이 가장 잘한 점으로는 대여공세가, 가장 못한 점으로는 '이재명 사법리스크 감싸기'가 각각 선정됐다.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는 2030세대 응답자 다수가 '기득권 정치'를 꼽았다. 경기도에 사는 30대 직장인 윤모씨는 "뉴페이스는 없고 '그 나물에 그 밥'인 늙은 정치가 계속되는 게 한국 정치의 고질병"이라며 "청년정치인 좀 팍팍 밀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야 모두 정쟁에 몰두하게 만드는 양당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도 많았다. 강원도에 사는 취업준비생 이모(23)씨는 "거대 양당이 권력을 나눠 갖는 탓에 여야 모두 잘하려 경쟁하기보다는 서로 남 탓만 하는 관행이 자리 잡았다"고 지적했다.

통합을 이뤄내야 할 정치가 오히려 사회적 갈등만 조장하고 있다는 불만도 터져나왔다. 인천에 사는 공무원 안모(26)씨는 "지난 대선에서 극에 달했던 '남녀 갈라치기'처럼 '혐오 정치'를 조장해 자기 잇속을 챙기는 정치인이 있다는 게 문제"라고 쏘아붙였다.

'최근 가장 관심을 두는 정치인'으로는 이준석 전 대표를 꼽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평가는 엇갈렸다. 20대 자영업자 윤다슬씨는 "국민의힘은 이 전 대표를 끌어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이 전 대표는 공정성과 형평성을 모두 갖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직장인 박모(30)씨는 "이 전 대표가 자극적인 단어와 정치 뒷얘기로 이슈만 만들어 내고 있다"며 차가운 인식을 드러냈다.

이 전 대표 외에도 윤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 대한 청년층의 관심이 높았다.

오주환 손재호 강보현 김승연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