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라는 나이는 스포츠 선수에겐 흔히 ‘활동 최후 한계선’ 같은 나이로 여겨진다. 제아무리 뛰어난 프로 스포츠 스타도 서른 중반을 넘어가면 기량이 급격히 후퇴한다는 ‘에이징 커브(Aging curve)’, 이 중력과도 같은 법칙에 수많은 선수가 40대의 문턱에서 소리 소문 없이 은퇴를 맞이했다.
올해 한국과 미국에선 에이징 커브의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 스타들이 활약하고 있다. 먼저 한국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의 이대호(40). 1982년생인 이대호는 8일 현재 타율 0.335로 전체 프로야구 선수 중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올 시즌 121경기에 출장해 안타 4위(154개) 타점 7위(84개) 홈런 8위(19개)에 올라 있다. 팀 내에선 타율, 홈런, 타점, 최다 안타 등에서 모두 1위다. 리그 최고령 선수가 다른 젊은 선수들을 실력으로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은퇴 투어를 하고 있지만, 팬들이 은퇴하지 말라고 말리는 이유다.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는 앨버트 푸홀스(42)가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이대호보다 두 살 더 많은 푸홀스는 이번 시즌 16홈런을 기록 중이다. 2001년 MLB에 데뷔한 푸홀스의 통산 홈런은 695개. 5개만 더 추가하면 MLB 147년 역사상 4번째로 ‘700홈런 클럽’에 가입한다. 빅리그 700홈런 클럽 회원은 베이브 루스(714개), 행크 에런(755개), 배리 본즈(762개)뿐이다. 하지만 푸홀스도 이대호와 마찬가지로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다.
테니스계의 살아있는 전설 세리나 윌리엄스(41)는 최근 은퇴 무대인 US오픈 여자 단식 3회전에서 탈락했지만, 정상급 플레이를 보여줬다. 세계 랭킹 605위인 윌리엄스는 마지막 불꽃을 태우듯, 2회전에서 우승 후보인 랭킹 2위 아넷 콘타베이트(에스토니아)를 꺾었다.
세 선수 모두 선수 생활 마지막까지 ‘클래스’를 보여주며 은퇴한다. 실력이 하락해서, 도무지 받아줄 수 있는 팀이 없어서 마지못해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정점에서 박수받으며 떠나는 것이다. 어쩌면 마지막 시즌이라는 점이 그들을 더욱 간절하게, 그래서 더 빛이 나게 만들었을지 모른다.
세 선수는 철저한 자기 관리로 시간이 가는 속도를 늦췄다. 나이가 신체 능력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운동선수조차 세월의 흐름에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위로를 준다. 어떻게 사느냐,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시대 흐름에 급하게 떠밀려나가지 않을 수 있다. 시간의 흐름을 ‘낡음’ 같은 숙명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 워싱턴포스트는 푸홀스의 활약을 소개하며 ‘늙지 않는(ageless)’ 선수라는 표현을 썼다.
자신만의 시간표에 따라 헤어질 결심을 하는 것도 이들이 보여준 미덕이다. 이대호는 이 실력에 왜 은퇴하느냐는 만류에 “이미 약속했다”고 했다. 푸홀스는 700홈런 달성 여부에 따라 은퇴 시점을 조절하라는 말에 “내 커리어는 충분히 놀라웠다. (다음 시즌에) 70홈런을 칠 수 없다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며 은퇴 의사를 고수했다. 윌리엄스는 “은퇴가 아니라 인생의 다음 챕터로 진화(evolving)하는 것”이라고 했다.
‘Greatest of All Time(역대 최고)’. 윌리엄스의 마지막 경기 당시 코트 전광판을 환하게 밝힌 문구다. 메이저 대회에서만 23회 우승한 살아있는 전설에게 마땅히 돌아가야 할 찬사였다.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와 ‘The Machine(타격기계)’ 푸홀스도 한국과 미국의 프로야구에서 역대 최고라는 점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역대 최고 실력의 선수들이 역대 최고로 멋진 은퇴를 하고 있다.
임성수 문화체육부 차장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