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선택하는 행위의 고단함

입력 2022-09-09 04:05

얼마 전 건강 상담 플랫폼을 만드는 해외 스타트업 창업자들을 만났다. 고객 분석을 무척 명쾌하게 해내는 팀이었다. 찬찬히 앱을 둘러보는데 생각보다 사용자 선택권이 없는 점이 아쉬웠다. 상담사 리스트를 보여주고,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고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창업자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여기에서까지 고객들에게 쇼핑을 시키고 싶지 않아요.” 대부분 꾹꾹 참아왔던 민감한 고민을 말하려고 비대면 건강 상담을 하는 건데, 최적의 상담사를 고르겠다며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설득당했다.

선택할 일이 참 많다. 정보가 방대해질수록 고민할 일은 더욱 많아진다. 추천 알고리즘과 필터링 시스템이 탁월하게 작동을 해도 소용없다. 서비스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딱 한 개의 결과값만 주는 것이 부담스러우니 여러 대안을 제시하고, 사용자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추석 선물 사는 일이 이토록 힘든 일이었던가. 고객님이 딱 좋아할 것만 큐레이션 했다는 사이트 화면에 품목은 또 어찌나 많은지! 고심해 골랐다고 꼭 최고로 탁월한 걸 택한 것도 아니다. 도리어 오래 재다가 원자재값, 인건비, 환율 상승으로 물건 가격만 훌쩍 오를 수도 있다. 철학자 레나타 살레츨이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에서 말했듯, 인간은 그 선택에 의해 발생할 변화와 그로 인해 그려질 이상적 미래를 꿈꾸지만 실제 벌어지는 상황은 별다를 게 없다. 그저 선택에 따른 책임과 부담감만, 온전히 고른 사람의 몫이 되는 구조에 우리가 살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선택 결과가 시원찮다 해도 굳이 죄책감에 시달리지 말자. 그때 저 집을 사지 않았어도, 그 순간 주식을 손절했어도, 그건 그저 그렇게 될 일이었을 뿐이다. 가만히 살기에도 고단한 세상에 자기 성찰까지 하는 건 벅차다. 재고, 고르고, 판단하는 것에 너무 힘 쏟지 말자. 송편은 차려졌고, 추석 연휴는 시작됐다. 아직도 선물을 고르고 있다면 마트에서 세 번째로 눈에 띄는 것을 사자.

유재연 옐로우독 AI펠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