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호 태풍 ‘힌남노’ 여파로 경북 포항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침수돼 주민 7명이 변을 당하면서 지하주차장 안전도 제고를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폭우 시 지하주차장은 가파른 경사와 나선형 진입로 때문에 밖으로 탈출하기 어려워 진입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우선 지하주차장 구조에 따른 유속(流速)을 조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명예교수는 7일 “건물 지하주차장은 보통 출입 램프 경사가 급하고 출입구가 나선형이나 곡면인 경우가 많다”며 “이럴 경우 소용돌이까지 더해져 유속이 더욱 빨라진다”고 설명했다. 급한 경사로를 타고 물이 쏟아져 내려오는 와중에 회전 가속도까지 더해진다는 얘기다. 출입구가 직선 모양일 경우에도 경사가 급해 유속은 가속된다.
앞서 폭우가 쏟아진 지난달 8일 서울 서초구의 한 빌딩 지하주차장에서도 40대 남성이 참변을 당했다. 이 남성 역시 폭우에 차량 안전 상태를 확인하러 지하 3층에 내려갔다가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바닥부터 30~35㎝ 이상 물이 차기 시작하면 성인도 중심을 잡기 어렵다. 밖에서 볼 때는 그다지 위험해 보이지 않아도 막상 들어가면 유속이 강해 물살에 휩쓸려 휘청거리게 된다”고 경고했다. “물이 잔잔하게 차오르는 것처럼 보여도 그 밑은 난류로 인해 물살이 거세게 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지하주차장에서 출입구를 통해 지상으로 나가는 건 물을 거슬러 올라가야 해 더 위험하다. 한건영 경북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물을 대피할 때는 기본적으로 물이 들어오는 방향의 반대로 피해야 하는데, 지하주차장의 경우 불행하게도 물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구조”라고 했다.
지하주차장 배수 처리 능력이 부실하다는 지적도 많다. 조 교수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을 설계할 때는 배수 자체를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위급할 때 붙잡고 서 있을 만한 난간이나 지지대와 같은 구조물도 적어 비상상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안형준 건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폭우나 집중호우 땐 단순 배수시설로는 그 양을 소화할 수 없다”며 “물을 뽑아낼 수 있는 추가적인 장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폭우 예상 시 지하주차장을 비롯한 지하 시설 자체를 이용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태풍이 온다고 안내방송을 할 경우 (사전에) 차를 지하가 아닌 지상에 주차하라고 안내하도록 하는 내용의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지하에 주차한 뒤에 폭우가 쏟아진다면 그때는 차를 포기하는 게 안전하다”고 했다.
배수시설을 충분히 갖추기 어렵다면 차수판 등 보조 수단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조 교수는 “주차장 입구에 차수판만 댔어도 피해가 이 정도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도 뒤늦게 지하주차장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오래된 공동주택 차수판 설치 의무화나 설치를 유도하기 위해 비용 일부를 지원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 관계자는 “배수가 잘 안 되는 지역의 지하주차장은 물이 순식간에 불어난다”며 “물을 하천에 방류할 수 있는 구조물을 설치하는 등 구조적인 대책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판 박민지 송경모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