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가 ‘고환율 폭풍’에 신음하고 있다. 13년 만에 최고점을 찍은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에 도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비상이 걸렸다. 특히 핵심 원재료의 수입 의존도가 높은 철강 산업, 외화부채 비중이 높은 항공 산업 등의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산업계 관계자는 “(환율이) 그냥 오르는 게 아니라 너무 빨리 오르고 있다. 대응 여력에도 한계가 있다”고 7일 토로했다. 직격타를 맞은 곳은 항공업계다. 항공사들은 거액의 항공기 리스료, 유류비 등의 고정비용을 달러로 결제한다. 환율 변동에 대비해 ‘환 헤지’(환율 변동에 대한 위험 회피)를 이용하지만, 단기간에 급등하면 손해를 피할 수 없다. 항공업계는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대한항공의 경우 약 350억원, 아시아나항공은 약 284억원의 손실을 보는 것으로 추산한다.
철강업계도 비슷한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철강 수요 부진으로 제품 가격이 떨어지고 있는 데다 달러 가치 상승이 겹치면서 원가 부담을 키운다. 대기업은 환 헤지 및 제품 수출로 원자재 수입가격 상승을 만회하고 있지만, 내수 비중이 높은 중소기업은 고스란히 ‘태풍’을 맞고 있다. 중소기업 관계자는 “환율이 오르면 속수무책 당하는 게 중소기업이다. 대책이란 게 사실 없다. 대기업처럼 물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바게닝 파워’를 갖기도 어렵고, 환위험 관리를 할 만한 인력도 없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환율 대응 능력은 떨어진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올해 6월에 중소기업 508곳을 설문 조사했더니, 환율 급등으로 피해가 발생했다고 답한 기업은 30.5%나 됐다. 환율이 그때보다 오른 지금은 피해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최근의 환율 흐름은 수출품 가격 경쟁력 강화라는 반사이익을 주지 못한다. 통상 고환율(원화 가치 하락)은 경쟁국 대비 한국산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준다. 이에 수출 증가를 유발한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수출 경합국의 통화 가치도 동반 하락하면서 가격 경쟁력 제고 효과를 누릴 수 없게 됐다. 에너지, 부품 등 수입 원·부자재 단가는 뛰면서 수익 악화를 우려해야 할 처지다. 산업계 관계자는 “수출 위주 기업들은 환차익을 얻어 실적에 일부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다만 그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원자재 수입이나 장비 수입, 재무 관련 이자비용 등도 달러로 결제가 이뤄진다. 환차익이 발생하더라도 비용 측면에서 환차손이 나타나면서 산업계 전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