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지하주차장이 자연재해 현장으로 돌변했다. 태풍 ‘힌남노’가 남긴 인명피해가 포항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집중됐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7일(오후 3시 현재) 집계한 사망·실종자 12명 중 7명이 포항 인덕동 우방신세계타운1차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희생됐다. 침수피해를 막기 위해 차를 빼려고 주차장으로 내려간 주민들이 순식간에 주차장 입구까지 차오르는 빗물에 갇히면서 목숨을 빼앗긴 참사였다.
포항 아파트와 비슷한 입지와 구조를 가진 아파트가 전국에 산재해 있다는 점에서 방재당국은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이번 참사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유사한 피해가 전국 어디에서라도 일어날 수 있다.
포항에서 피해가 컸던 건 20여m 폭의 도로를 끼고 아파트 바로 옆을 지나는 하천이 범람했기 때문이다. 인근 하천인 ‘냉천’은 100m 안팎의 제방 사이로 10~20m 폭의 물길이 지나고 있다. 평소에는 물이 말라 바닥을 드러낼 때가 많았다고 한다. 2002년 태풍 ‘루사’와 2003년 태풍 ‘매미’때는 냉천이 범람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시간당 100㎜ 안팎의 폭우가 쏟아지자 냉천은 제방을 넘어 인근 아파트 단지를 물바다로 만들었다.
냉천이 폭우에 취약해진 건 2012~2017년 실시된 하천정비사업 탓이라고 주민들은 지적하고 있다. 공사를 벌이면서 하천 폭이 좁아지고 유속이 빨라졌다는 것이다.
하천 범람으로 가장 취약한 공간은 아파트 지하주차장이었다. 1995년 준공된 이 아파트는 빗물을 막는 차수판 같은 시설이 없었다. 서울시 서초구의 경우 2011년 우면산 사태 이후 신축 건물 지하층에 차수판을 설치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포항을 신속히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겠다고 했다. 신속한 복구와 피해 주민 위로, 그리고 보상이 시급하다. 이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재발 방지책 마련이다. 전국의 위험지역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차수판을 설치하고 배수펌프시설을 보강하는 등 근원적인 대책 마련이 병행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