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령과 죽령의 남쪽이라는 뜻의 영남 지역은 부산·대구·울산 3개 광역시와 경북·경남 2개 도로 나누어져 있다. 1970년대까지는 노동집약산업의 중심으로 황금기를 맞았지만 현재는 수도권 일극화 체제 속에서 인구 및 지방 소멸 등의 위기를 맞고 있다.
영남권 소멸 위기 극복과 동반 성장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국민일보 주최로 지난 1일 경북 경주에서 열렸다. 부산·대구·울산·경북·경남 5개 광역자치단체가 참여한 ‘2022 영남미래포럼’에서 홍준표 대구시장, 김두겸 울산시장, 이철우 경북지사, 박완수 경남지사와 이성권 부산시 경제부시장은 지방 생존을 위해선 영남권의 연대와 지방 권한 확대가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이철우 경북지사는 포럼에서 “수도권공화국 고착화로 비수도권은 고사 직전”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헌법 1조에 지방분권을 명시해야 한다. 지방정부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재정권, 자치조직권을 확실히 넘겨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완수 경남지사도 “지자체가 국(局) 하나 못 만드는 게 무슨 지방자치인가. 국가 기능을 리셋해 중앙집권적인 불균형을 해결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했다. 김두겸 울산시장 역시 “수도권 일극화를 막을 방법은 조세권을 지방에 넘겨주는 것”이라며 “지방이 지역에 맞는 조세 권한을 행사해 재정 독립을 이뤄야 한다”고 했다.
실현 여부와 경제적 효과 등은 몇 년 뒤 제대로 따져봐야겠지만 5개 시·도가 제시한 청사진은 지방 소멸 위기 극복을 위한 고민의 산물이다. 부산시는 가덕도신공항 조기 개항과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를 내걸었고, 대구시는 ABB(AI·빅데이터·블록체인) 등 산업구조 개편, 중·남부권 중추공항 건설을 발표했다. 울산시는 자동차·조선·석유화학 등 주력산업 첨단화, 신성장산업 육성에 주력하기로 했다. 경북도는 5대 메가테크, 농산어촌 대전환, 바이오산업 대전환 프로젝트 등을, 경남도는 항공우주산업 및 원전·방위산업 등을 집중 육성하기로 다짐했다.
무엇보다 이번 포럼에서 의미를 두고 싶은 부분은 각 시·도 단체장이 영남권의 상호 협력과 연대가 필요하다는 데 의기투합했다는 점이다. 이는 각각의 핵심 사업이 한 지자체의 이익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영남권 전체의 이익과 균형발전으로 이어진다는 공통된 인식에 따른 것이다.
물론 영남권 5개 시·도 상호 협력의 미래가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문재인정부가 추진하던 국내 첫 메가시티 ‘부산·울산·경남 특별연합’ 출범 논의는 사실상 올스톱된 상태다. 부울경 특별연합은 내년 1월 사무를 시작할 수 있지만, 민선 8기 출범 후 울산과 경남의 부정적인 반응으로 준비 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적극적인 부산과 달리 울산은 울산의 경제가 부산 권역에 흡수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경남은 서부경남이 소외될 수 있다는 명분으로 메가시티에 미온적이다.
대구시와 경북 구미시의 해묵은 ‘물 갈등’ 역시 마찬가지다. 두 지자체는 1991년 발생한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 이후 낙동강 물 문제를 둘러싸고 반목과 봉합을 반복하다 최근 취수원 다변화 사업과 관련해 다시 한번 갈등을 빚고 있다.
그럼에도 국가적 문제인 지역 불균형의 심각성을 감안하면, 이런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연대와 협력이라는 것이 너무나 명백하다. 영남권이 국가 균형발전의 중요한 축으로 수도권에 상응하는 초광역 생활권으로 발전하기 위해선 5개 시·도의 상호 협력체계 구축이 절실하다. 그러기 위해선 이견이 있는 사안은 최대한 타협과 양보로 협상하고, 협력해야 한다. 국가 균형발전과 진정한 지방자치, 지자체 간 상호 연대·협력은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
남혁상 사회2부장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