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당이 갈수록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보통 어수선하던 정당도 선거가 끝나면 일상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선거 후에 당내 이전투구 양상이 더 심해지고 있다. 선거에서 승리한 여당이 더 길을 못 찾고 헤매고 있다. 사실 우리 정당이 천덕꾸러기가 된 지 오래됐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사고뭉치 수준을 넘어 사회악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더 이상 고쳐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러한데 우리 정당은 여전히 당권 싸움에만 몰두하고 있다.
여야 모두 정치개혁, 정당개혁을 앞세우나 국민은 그 개혁의 내용을 들어본 바가 없다. 극도로 심각해지는 경제 위기를 벗어날 방안을 놓고 당 내부에서 혹은 여야 간에 다툼이 벌어진 적이 없다. 가파르게 오르는 물가 때문에 국민이 겪는 고통은 극에 달해 있는데, 여야 누구도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관심사는 온통 당권에 쏠려 있다. 훌륭한 당 대표를 뽑으면 정당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조금은 걷힐까?
전 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 Survey)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75%가 정당을 신뢰하지 않는다. 1990년대 이후 실시된 모든 조사에서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정당에 대한 불신이 단순히 당 대표나 지도부의 무능이나 탐욕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야 할 것 없이 볼썽사나운 당권 다툼을 벌이고 있지만 누가 당권을 잡아도 정당에 대한 국민 불신을 사그라뜨리지는 못할 것이다.
매년 전 세계 국가의 민주주의 수준을 평가하는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의 연례보고서는 2007년 이후 2021년까지 15년 동안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민주주의의 지구적 위기를 지적하고 있다. 많은 학자가 ‘대의민주주의’가 한계에 이르렀고 새로운 민주주의 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당은 대의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핵심적 제도이기에 정당 정치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어렵다. 과연 우리 정당이 수렁에 빠진 민주주의를 구해낼 수 있을까?
지난 세기말부터 급속히 진행되는 사회 변화 양상을 고려한다면 지금의 정당은 더 이상 민주주의의 버팀목이 될 수 없다. 인류사회는 농업사회와 산업사회를 넘어 정보사회로 진화 중이다. 현재 우리가 사는 정보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과거 산업사회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보인다. 지금의 정당 정치는 산업혁명의 결과물이다. 산업혁명과 함께 등장한 영국의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정치적·경제적 권리를 쟁취하고자 노동당을 만들어 자본가 이익을 대표하는 보수당과 경쟁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사는 정보사회에서도 노동자와 자본가 간 계급 갈등이 여전히 핵심적 균열 구조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계급 구조는 훨씬 복잡해지고 다원화됐다. 노동자의 이익이 무엇인지 정리하기는 불가능하다. 나아가 많은 사람이 물질적 가치보다는 삶의 질, 환경, 인권, 평화 등과 같은 탈물질적 가치를 더 중요시한다. 이런 사회경제적 환경 변화로 인해 한 정당이 누구를, 무엇을 대표하는지 규정하기는 불가능하다. 지난 수십년 동안 그리고 대부분의 국가에서 정당 불신이 지속되는 원인은 단순히 정치인이나 당 지도부의 잘못에만 있지 않다. 그보다는 훨씬 큰 구조적 문제, 즉 사회 전환(social transformation)의 차원에서 그 원인과 대응 방안을 찾아야 한다. 노동자와 자본가라는 획일화된 집단을 대표하는 대중정당(mass party)은 다원화와 다양화를 넘어 개인화된 정보사회와는 맞지 않는다.
정당개혁의 올바른 방향은 훌륭한 지도부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대의·대표(representation)’라는 본연의 역할을 수행할 방안을 찾는 것이어야 한다. 정보사회의 개인들은 선출된 대표들에게 자신들의 정치적 권리를 위임하기보다는 직접 참여해 스스로 대표하고자 한다. 변화된 사회구조와 유권자 인식에 맞추기 위해서는 정당의 권력 구조를 과감하게 분산하고 하방(下方)하는 것이 필요하다. 당 대표와 지도부가 독점하는 입법권과 공천권을 개별 의원에게, 지역구로, 그리고 지역 유권자에게 넘겨야 한다. 정당개혁의 방향은 중앙당 권력을 지구당과 유권자가 대체하는 것이어야 한다. 사즉생(死卽生), 당 대표를 없애는 것이 정당이 살길이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