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호 태풍 ‘힌남노’는 한반도에 상륙한 뒤 바다로 빠져나간 2시간20여분 동안 경북 포항과 경주 등 경북 동해안 지역에 유독 깊은 상처를 입혔다. 힌남노는 강풍과 함께 누적 378㎜에 달할 정도의 물폭탄을 포항 지역에 쏟아부으면서 도심 곳곳이 침수됐다. 인명피해 역시 포항 지역에 집중됐다.
포항시 남구 오천읍의 한 아파트에서는 6일 오전 지하주차장이 침수되자 차를 빼러 내려간 최소 주민 8명이 한꺼번에 실종됐다. 이중 1명은 오후 8시15분쯤 14시간 만에 극적으로 구조됐다. 구조된 주민은 전모(39)씨로, 숨을 쉴 수 있는 에어포켓에 머물러 있다가 소방당국의 배수작업으로 수위가 내려가면서 스스로 헤엄쳐 나왔다. 전씨는 병원으로 가는 119구급차 안에서 아내와 통화하면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는데, 아이들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는 심경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는 비교적 건강한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곧이어 오후 9시41분쯤에는 51세 여성 김모씨가 구조됐다. 김씨는 의식은 명료했지만 저체온증 증세를 보여 병원에 이송됐다. 오후 10시20분쯤에는 여성 2명, 남성 1명이 의식이 없는 상태로 발견됐다. 이들 3명은 애초 실종자 명단 7명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종자들은 오전 6시30분쯤 “차량이 침수될 수 있으니 옮기라”는 관리사무소의 안내방송을 듣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가 연락이 두절됐다. 이 아파트는 인근 하천인 냉천과 가까워 폭우로 인해 범람한 물이 지하주차장으로 흘러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아파트 주차장은 지하 1층으로 이뤄져 있다.
오천읍의 다른 아파트 주차장에서도 60대 여성이 실종 신고 6시간여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이날 자정 현재 포항·경주 지역에서만 이들을 포함해 3명 사망, 3명 심정지, 최소 3명이 실종됐다.
힌남노는 오전 4시50분쯤 경남 거제 부근을 통해 한반도에 상륙한 뒤 7시10분쯤 울산 앞바다를 통해 동해로 빠져나갔다. 상륙 당시 중심기압은 955hPa(헥토파스칼), 최대풍속은 초속 40m로 강도는 ‘강’이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힌남노로 주택 72채, 상가 8채가 침수됐고 주택 4채가 파손됐다. 어선 전복은 4건 있었다. 사유시설 피해는 모두 190건이다. 도로·교량 45건, 산사태 15건 등 공공시설 피해는 336건이다. 침수를 비롯한 농작물 피해 면적은 3815.2㏊로 경북 2308㏊, 경남 477㏊, 전남 411㏊, 제주 280㏊ 등이다. 피해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곳곳에서 정전사고도 잇따랐다. 정전은 총 199건으로 8만9180호가 피해를 보았는데 복구율은 오후 6시 현재 88.5%다. 주택 파손 등으로 인한 일시 대피자는 전국적으로 3383세대 4533명이다. 여객선은 연안여객선과 국제여객선을 포함해 122개 항로 183척의 운항이 중단됐다. 전국 곳곳의 학교가 이날 하루 휴업하거나 전면 원격수업으로 전환했다.
포항=안창한 기자, 강준구 양한주 기자 chang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