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 치우쳐 피해 지역 적었지만… 포항·경주에 400㎜ ‘물폭탄’

입력 2022-09-07 04:07
제11호 태풍 ‘힌남노’로 많은 비가 내리고 강풍이 불었던 6일 경북 포항시 남구의 한 풀빌라가 강한 물살에 떠내려가 비스듬히 내려앉았다. 포항=이한결 기자

6일 한반도를 할퀴고 지나간 제11호 태풍 힌남노는 중심기압으로는 역대 3위, 풍속으로는 8위 태풍으로 기록됐다. 과거 비슷한 규모의 태풍이 전국적으로 인명 피해를 발생시켰던 것과 비교하면 힌남노 피해 지역 범위는 제한적이었다. 다만 직격을 당한 포항과 경주 등 남부지방에서는 400㎜가 넘는 ‘물폭탄’이 쏟아지면서 큰 피해가 발생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힌남노의 중심기압은 이날 오전 5시53분 부산 오륙도에서 관측된 955.9hPa(헥토파스칼)이었다. 1959년 태풍 사라(951.5hPa)와 2003년 태풍 매미(954.0hPa)와 맞먹는 강도이자 역대 세 번째로 강력한 수준이었다. 태풍은 열대성 저기압이라 중심기압이 낮을수록 주변 공기를 더 강하게 빨아들인다. 이광연 기상청 예보분석관은 “최저해면기압이 매미와 고작 1.9hPa 차이에 불과할 정도로 힌남노는 상당히 강력한 ‘역대급 태풍’이었다”고 평가했다.

다만 바람 세기는 상대적으로 약했다. 힌남노의 일 최대풍속은 초속 37.3m로 역대 8위였다. 매미의 일 최대풍속은 초속 51.1m였다. 순간 최대풍속도 힌남노는 초속 43m를 기록했지만 매미의 경우 초속 60m 수준이었다.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몰고온 폭우 영향으로 6일 경북 포항시 북구 대흥중학교 뒤편에서 산사태가 발생했다. 차량 10여대가 쓸려 내려갔다. 포항시는 추가 붕괴를 우려해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포항=이한결 기자

기상청은 태풍의 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중심기압과 풍속 등의 수치가 실제 피해 규모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태풍의 크기(범위)나 체류 시간 등에 따라 강수량에서 큰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힌남노는 이동 경로에 포함된 제주도와 경북 경주, 포항, 울산 등에 많은 비를 뿌렸다. 특히 제주 산지에는 지난 1일부터 이날 오전 11시까지 누적 강수량 1188㎜를 기록하기도 했다. 전국 연강수량(1000~1300㎜) 수준이 이 기간 쏟아부어진 셈이다. 경주(483.5㎜), 포항(466.1㎜), 울산(422.5㎜), 경남 산청군 지리산(376㎜)에도 많은 비가 내렸다.

특히 북쪽에서 내려오는 건조한 공기와 남동쪽에서 태풍으로 인해 불어오는 고온 다습한 공기가 만나면서 ‘선상강수대’가 발달해 집중적으로 비가 내렸다. 기상청은 “성질이 다른 두 공기가 충돌하면서 선상강수대가 강하게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선상강수대는 띠 모양의 비구름대로 단시간에 집중적으로 비를 내린다. 지난달 8일 서울 등 수도권 일대에서도 많은 비를 뿌린 것도 선상강수대였다.

태풍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린 6일 오전 경북 경주 문무대왕면 일대 도로가 불어난 하천에 휩쓸려 유실된 모습. 연합뉴스

전국이 태풍의 직접 영향권에 들 수 있다는 예측과 달리 힌남노가 동쪽으로 치우쳐 이동하면서 ‘역대급 피해’를 피할 수 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반도 대부분이 태풍의 동쪽에 해당하는 ‘위험반원’을 피했다는 것이다. 문일주 제주대 태풍연구센터장은 “태풍의 강도 자체는 강했지만 중심이 동쪽으로 치우쳐 통과하면서 한반도가 대부분 좌측 반원에 속하게 됐고, 바람 피해가 적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 경로가 예상보다 더 동쪽으로 기울면서 결과적으로 국내에 머무는 시간도 줄었다. 기상청은 애초 힌남노가 한반도 내륙에서 3~4시간 정도 머물 것으로 내다봤지만 실제로는 약 2시간20분 만에 동해상으로 빠져나갔다.

앞으로 힌남노와 비슷한 ‘강력한 가을 태풍’이 더 자주 한반도를 찾아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태풍은 보통 북위 30도를 넘어서면서 세력이 약화되는데, 힌남노는 이례적으로 북위 30도를 넘어서 오히려 세력이 다시 강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기상청은 한반도 주변의 높은 해수면 온도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힌남노 이후에도 강력한 태풍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기상청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현재 이상으로 배출하는 경우 한반도 주변 해수면의 온도가 오는 2040년까지 1도 이상 상승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김판 양한주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