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배구의 ‘도쿄 4강 신화’ 빛은 짧았다. ‘월드클래스’ 김연경 등 주축들이 대표팀에서 은퇴하자 바로 위기가 왔다. 도쿄올림픽 당시 수석코치였던 세자르 에르난데스 곤잘레스 새 감독이 선임됐지만 어려운 상황임은 여전했다. 그는 지난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를 앞두고 “굉장히 큰 바위가 앞에 있다. 처음엔 움직이지 않겠지만 계속 밀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VNL에서 12전 전패를 당한 세자르호는 오는 23일부터 네덜란드·폴란드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반등하기 위해 지난달 1일부터 담금질 중이다. 오는 11일 불가리아로 출국해 연습경기를 가진 뒤 세계선수권으로 향한다.
국민일보는 세자르 감독과 지난달 30일 화상, 지난 2·4일 서면으로 인터뷰를 가졌다. 감독 부임 후 첫 언론 인터뷰다. 과거 100㎞ 울트라마라톤 등 한계에 도전하는 것을 즐겼다던 그는 현재 한국 여자배구와 함께 새 도전에 분투 중이다.
VNL은 변화가 더 절실해진 계기였다. 세자르 감독은 “국제수준의 경쟁이 안 됐다”며 “다른 결과를 얻으려면 기존과는 다르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제’ ‘변화’ ‘미래’ 등을 자주 언급했다. 유럽 최고의 팀으로 전 시즌 5관왕을 달성한 바키프방크의 수석코치이기도 한 그는 누구보다 가까이서 국제 수준을 봐왔다.
그는 기술·전략·피지컬을 근본부터 바꾸려 한다. 피지컬 부분에선 차와 속도 비유를 들었다. 그는 “시속 50㎞보다 100㎞로 달리는 차의 사고가 심각할 가능성이 크다. 중요한 건 차가 아니라 속도”라며 “국제수준은 속도가 빠르다. 시속 150㎞로 달리려면 근육, 파워, 가동성이 좋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격성공률도 과제다. 세자르 감독은 “최소한의 경쟁을 위해선 40%는 돼야 한다”며 “VNL에서 한국은 34%였다”고 말했다. 이어 “빠른 공격, 최적의 공격수 배치, 블록아웃 등 훈련 80% 이상을 공격에 둔다”고 덧붙였다. 이밖에 훈련 방식, 선수들의 식단과 영양, 회복 등도 개선 대상이다.
함께 변화 중인 선수들에 대해선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팀에 가장 좋은 옵션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을 뽑았다”며 “변화를 얘기했을 때 모두 이해해줬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매일 변화하려 노력한다”고 전했다. 새 주장 박정아에 대해선 “김연경의 자리를 이어받은 어려움을 이해한다”며 “좋은 주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선수선발, 차출시기를 둘러싼 구단들과의 갈등설에 대해선 한국 현실을 이해한다고 했다. 그는 “구단들은 훈련시설, 합숙 등 좋은 시스템을 갖고 있다. V리그의 프로모션도 좋고 여름 컵대회도 굉장히 좋다”고 말했다. 코보컵에 대해서는 “외국 선수가 공격 대부분을 맡는 V리그와 달리 다양한 공격이 이뤄졌고 전술도 복잡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프로리그와 국제대회 발전을 동시에 해야 한다”며 “현재 인기는 V리그 구단들의 노력과 대표팀 활약 덕분이다. 하나라도 빠지면 미래에는 없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선수권 목표는 우선 조별예선 통과다. 한국은 도미니카공화국, 튀르키예, 폴란드, 태국, 크로아티아와 한 조다. 크로아티아(불참)를 빼면 VNL에서 모두 패한 만큼 난적들이다. 하지만 VNL 막판에 보여준 가능성, 지난 6주간의 훈련 등 긍정적 요소도 있다.
세자르 감독은 “이탈리아, 중국 경기에선 경쟁력이 보였다”며 “선수들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경기를 뛰며 적응했다”고 말했다. 이어 “클럽팀 일정으로 VNL 이틀 전에 도착했고 대회 기간 훈련도 어려웠었는데, 이번엔 6주간 함께했다”며 “불가리아 연습경기에서 우리의 수준을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팬들을 향해선 “항상 지지해주셔서 감사하다”며 “향후 한국에서 경기를 보여드리고 팬들과 함께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