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는 Cheat… 韓 당국은 부당하게 관여”

입력 2022-09-07 04:06

한국 정부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6조원대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ISDS) 사건을 심리한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중재판정부가 론스타에 대해 “‘속이고 튀었다(Cheat and Run)’고 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론스타가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으로 유죄가 확정되는 등 한국 시장에서 단순히 ‘먹고 튀었다(Eat and Run)’고 비유할 수준을 넘었다고 본 것이다. 다만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한국 금융 당국이 부당하게 승인을 보류했다는 론스타 측 주장도 일부 인정하며 양측이 50%씩 분담하도록 했다.

법무부가 6일 공개한 20쪽 분량의 ‘론스타 ISDS 사건 판정 요지서’에 따르면 ICSID 중재판정부는 판정문에 “론스타가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점에 비춰 보면 ‘먹고 튀었다’를 넘어 ‘속이고 튀었다’고 볼 수 있다”는 내용을 기재했다. 하지만 금융 당국이 외환은행 매각 가격이 내려가도록 승인 심사를 보류하는 정책(Wait and See)을 취해 ‘공정·공평대우 의무’를 위반했다는 내용도 판정문에 기재했다. 중재판정부는 2012년 ISDS 사건 접수 10년 만인 지난달 31일 한국 정부가 론스타에 2억1650만 달러(약 2900억원)와 지연이자금을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중재판정부는 다수 의견을 통해 금융 당국의 가격 인하 및 승인 지연 정책 배경에 여론의 비난을 피하려는 한국 정치권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당시 여러 정치인이 국회에 나온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에게 “매각 가격 인하가 필요하다”고 압박하고, 가격 인하 이후엔 이를 축하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는 등 금융 당국이 압력을 행사할 동기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하나금융 관계자가 론스타 측에 “가격을 낮추면 금융위의 정치적 부담이 낮아질 것”이라고 언급했다는 대화 내용도 중재판정부에 증거로 제시됐다.

중재판정부는 또 “사인(私人) 간 계약 조건에 관여하는 건 금융 당국의 권한 내 행위가 아님에도 정치적 부담을 피하고자 외환은행 매각 가격 인하를 위해 노력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론스타 역시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으로 유회원 전 론스타 대표가 징역 3년형을 확정 선고받는 등 가격 인하의 여지를 줬다는 점에서 손실의 절반을 부담해야 한다고 봤다.

법무부는 론스타 측과 협의를 거쳐 판정문 전문을 공개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판정 취소 사유 등을 면밀히 검토해 기한 내(판정 후 120일 이내) 신청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