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창 안숙선, 드디어 판소리 ‘춘향’ 인간문화재 됐다

입력 2022-09-07 04:05

‘판소리계 프리마돈나’ ‘영원한 춘향’으로 불리는 안숙선(73·사진) 명창이 판소리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문화재청은 6일 안 명창을 판소리(춘향가)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인정하면서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였던 김소희(본명 김순옥·1917∼1995) 명창에게 춘향가를 배웠으며,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을 만큼 판소리 전승에 힘써 왔다”고 설명했다.

안 명창은 판소리 다섯 바탕에 통달한 예인으로, 특히 춘향가를 통해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 안 명창이 이제야 판소리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 즉 속칭 인간문화재가 됐다는 사실에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을 듯하다. 이것은 안 명창이 ‘가야금 산조 및 병창’ 인간문화재였던 스승 박귀희(1921∼1993) 명창의 계승자여서 생긴 일이다.

전북 남원 출신인 안 명창은 9살에 이모이자 가야금(신관용류)의 명인인 강순영 선생과 외삼촌이자 동편제 판소리(흥보가) 거장이었던 강도근 명창의 손에 이끌려 국악을 시작했다. 남원의 아기 명창으로 불리며 어린 시절부터 주목받던 안 명창은 19살에 서울로 상경해 60년대 말부터 70년대까지 김소희와 박귀희 문하에서 판소리와 가야금을 배웠다. 두 스승은 안 명창의 예술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이외에도 당대 최고 명창들인 정광수(수궁가), 성우향(심청가), 박봉술(적벽가), 오정숙(흥보가) 등과 가야금 산조 명인인 함동정월(최옥삼류), 원옥화(강태홍류), 김죽파(김죽파류) 등을 사사한 안 명창은 판소리와 가야금 병창 및 산조에서 일가를 이뤘다.

안 명창은 1979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해 주역을 도맡았으며 1986년 판소리 5바탕(춘향가, 흥보가,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을 완창했다. 가야금 산조 및 병창 인간문화재가 됐지만 안 명창은 판소리에 더욱 진력했으며 국립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누구보다도 김소희 선생의 소리를 오롯이 받았다’고 하는 안 명창이 판소리 인간문화재가 되지 못한 것을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안타까워했었다.

안 명창은 이번에 판소리 인간문화재가 되면서 기존 가야금산조 및 병창 보유자 자격을 잃게 된다. 과거에는 이매방(승무·살풀이춤), 한영숙(승무·학춤)처럼 복수 종목의 인간문화재가 나온 적도 있다. 하지만 현재 문화재청은 국가무형문화재 전승 체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가능한 한 명의 보유자가 여러 종목에서 동시에 인정받지 않도록 하고 있다. 다만 같은 종목에서 같은 유파의 인간문화재는 인정하고 있다.

안 명창은 지난 7월 문화재청이 자신을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춘향가 보유자로 인정 예고했을 때 “더없는 기쁨이다. 앞으로도 우리 소리를 더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데 온 힘을 쏟겠다”라는 소감을 밝힌 바 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