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처음 보는 태풍

입력 2022-09-07 04:10

20세기에 세워진 한반도의 태풍 기록은 21세기 들어 대부분 갈아치워졌다. 바람이 가장 강했던 1992년 테드(초속 51m)는 2003년 매미(초속 60m)를 비롯한 21세기 태풍 7개에 추월당해 순간최대풍속 8위로 밀려났다. 비를 많이 뿌렸던 1981년 아그네스(전남 장흥 547.4㎜)는 2002년 루사(강원도 강릉 870.5㎜)에 큰 격차로 일최다강수량 1위를 내줬다. 태풍 강도를 말해주는 중심기압(낮을수록 강하다)도 10위권에 남아 있는 20세기 태풍은 셋뿐이다. 1959년 사라(951hPa)가 여전히 1위지만, 계속 위협당하고 있다. 그에 버금가는 힌남노(955hPa)가 이번에 또 상륙했다.

아시아의 태풍은 북미의 허리케인에 비하면 세력이 다소 약한 편이었다. 허리케인이 발생하는 대서양보다 태풍이 형성되는 북태평양 수온이 1~2도 낮아서 그랬는데, 지구온난화로 수온이 높아지면서 점점 허리케인을 닮아간다. 갈수록 난폭해지고 있다.

21세기 태풍도 2000년대와 2010년대가 또 다르다. 2010년대 들어 북태평양 태풍 발생 건수는 한두 해를 제외하고 해마다 늘었다. 2019년에는 1월부터 관측되기 시작해 연중 29개나 발생했다. 평균 스물대여섯 개이던 것이 급증하자 이러다 태풍 30개 시대가 오겠다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태풍 시즌도 늦춰지고 있다. 2010년 이후 11월 태풍이 발생하지 않은 해가 없다. 특히 2019, 2020년은 10~11월에 집중됐다. 여름 태풍이 줄어들고 가을 태풍이 늘어나는 현상 역시 온난화가 아니면 설명하기 어렵다. 여름이 지나면 식어야 하는 가을 바다가 여전히 뜨거워 태풍의 무대가 됐고, 이런 바다는 힌남노처럼 북위 30도를 넘어서도 계속 세력을 키우는 ‘처음 보는 태풍’을 낳았다.

장마백서를 준비 중인 기상청장은 “더 이상 장마는 한국 여름을 설명하는 용어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여름비의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500년간 써온 정든 말과의 이별을 강요하는 기후변화. 이제 그만큼 오래 쌓아온 우리의 태풍 상식도 어서 바꾸라고 재촉하는 듯하다.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