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다가왔다. 모처럼의 연휴를 즐길 생각보다는 차례상 차리기와 손님맞이 때문에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럴 만도 하다. 차례를 비롯한 우리나라 제사 문화가 유난히 번거롭고 복잡한 건 사실이다. 유교 문화권에 속하는 나라들이 대체로 제사를 중시하지만 우리만큼 중시하는 나라는 없는 것 같다. 우리 정서가 박한 것보다는 후한 것을 좋아해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짓을 해서 그렇다.
제사의 형식은 예법에 정해져 있지만 여건이 다르므로 그 실상은 제각각이다. 예법에 따르면 서민은 부모의 제사만 지내면 되는데, 조선시대에는 제사 범위가 야금야금 늘어나 4대조의 제사를 전부 지냈다. 또 제사는 기일에 한 번만 지내면 되는데, 그걸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생신에도 지내고 명절에도 지냈다. ‘차례’라는 명목이었다. 제사라고 하지 않고 차례라고 하는 이유는 차례상에 올리는 음식이 차 마실 때 곁들여 먹는 간식처럼 간소해서다. 하지만 제사 횟수와 제수 가짓수가 갈수록 늘어나면서 제사상과 차례상의 구분은 점차 모호해졌다.
그래도 차례상에 어떤 음식을 올리는지, 그 음식을 어디에 놓는지는 지역마다 다르고 집안마다 달랐다. 반드시 올려야 하는 음식도 없었고, 절대 올리면 안 되는 음식도 없었다. 그때그때 구하기 쉽고 가장 맛있는 제철 음식을 올렸다. 지금도 지역별로 특색 있는 차례 음식이 있다. 고인이 즐기던 음식이라면 예법과 무관하게 올리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홍동백서, 조율이시, 어동육서, 좌포우혜 따위의 차례상 차리는 법은 양반 행세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급조한 지침일 뿐이다. 예서를 보면 그냥 과일이라고만 했지 무슨 과일을 어디에 둬야 한다는 말은 없다. 우리의 전통 차례 문화는 다양하고 융통적이었다. 이것을 획일적으로 만든 것이 가정의례준칙(1969)이다.
예로부터 관혼상제를 비롯한 사회 관습을 통제하는 정책의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는 간소화, 둘째는 표준화다. 사회 관습은 내버려두면 사치스럽고 복잡하게 변하기 마련이다. 국가 입장에선 사회적 비용의 낭비이며 비효율의 극치다. 또한 국가는 사회 관습의 통일을 바란다. 지역마다 집안마다 관습이 다르면 통제가 어렵기 때문이다. 급속한 산업화 시대 산물이었던 가정의례준칙은 전통적 관습의 해체를 가속화했다. 전통 관혼상제 문화를 허례허식으로 배격하고 표준화된 지침을 강요해 획일화했다. 오늘날 가정의례준칙은 사문화됐지만 그 흔적은 지금의 관혼상제 문화에 여전히 남아 있다.
이제는 가정의례준칙이 간소화한 관습마저 사라져가고 있다. 명절 차례의 남은 목숨도 그리 길어보이지 않는다. 이미 차례를 지내지 않는 집이 많다. 지내더라도 예전처럼 수고를 들일 필요가 없는 시대다. 명절이면 전통시장, 마트, 백화점 식품코너에서 온갖 제사 음식을 판다. 시장에서 사다 쓰면 정성이 부족하니 손수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우스운 말이다. 차례를 지내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 시대다. 조선시대에도 명절 음식은 시장에서 다 사다 썼다. ‘동국세시기’가 증언하는 19세기 서울의 상업화된 명절 풍속이다. 클릭 몇 번이면 집까지 배달해주는 21세기에 굳이 쭈그리고 앉아 기름으로 얼굴을 코팅해 가면서 전을 부치고 있을 이유가 없다. 명절 스트레스를 없애고 가족 구성원 모두가 명절을 즐기려면 수고를 줄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누군가의 수고에 의지하는 관습은 오래가지 못한다.
명절 차례의 본질은 가족 간 화합이다. 그 형식은 여건에 맞춰 바꿔도 무방하다. 본질은 잊은 채 형식에 집착하느라 갈등을 빚는다면 본말전도다. 형식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장유승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