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태풍’ 힌남노는 5일 낮 12시 제주 서귀포시 남남서쪽 370㎞ 부근 해상(북위 30도)을 지나며 더욱 강해졌다. 5일 기상청이 공개한 위성영상을 보면 힌남노가 북위 30도를 지날 때 ‘태풍의 눈’과 그 주변에 형성된 ‘눈벽’ 구름대가 더욱 또렷해졌다.
기상청은 이런 힌남노의 기세를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한상은 기상청 총괄예보관은 “약한 태풍이 북위 30도를 넘어가면서 일시적으로 강해질 수는 있는데, 이번처럼 강한 세력을 유지한 태풍이 다시 강해지는 건 처음 보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힌남노가 이례적으로 세를 불린 건 바다의 높은 온도, 고기압의 영향 등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힌남노를 약화시킬 만한 별다른 ‘방해요인’도 없었다. 이런 요인들이 결합하며 힌남노는 역대 가장 강력한 위력을 지닌 채 한반도에 상륙하게 됐다.
태풍 발달의 주된 배경으로는 고수온이 꼽힌다. 태풍이 ‘바다의 열을 먹고 사는 생물’에 비유될 정도로 해수면의 높은 온도는 태풍 발달의 핵심 원인이다. 기상청은 “태풍의 에너지원은 고수온 해역”이라며 “우리나라 남쪽 해상에서도 여전히 29도 이상의 높은 해수면 온도가 확보돼 태풍이 발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구온난화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일주 제주대 태풍연구센터장은 “보통 태풍이 동중국해를 지나면서 약해진다고 알려져 있지만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동중국해의 수온이 많이 상승했다”며 “해수면 온도가 높기 때문에 태풍의 강도도 높게 유지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남영 경북대 지리학과 교수도 “지구 온난화의 패턴으로 제주 남쪽 해역이 여전히 고수온을 유지하고 있었다”며 “지구온난화가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커지진 않았을 수도 있다”고 했다.
해수면 온도와 함께 동쪽과 서쪽 양쪽에 고루 발달한 고기압도 태풍을 더욱 빠르게 회전시켰다. 기상청은 “태풍 왼쪽과 오른쪽에 모두 고기압이 형성돼 그 가운데에 놓인 태풍을 계속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시켜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힌남노는 진행 방향의 좌우 모두에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전국 어느 곳도 안전하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통상 태풍은 반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전진하기 때문에 이동 속도가 풍속에 더해지는 오른쪽 지역(부산·울산)이 ‘위험반원’으로 분류된다. 상대적으로 태풍 진로 왼쪽 지역은 태풍의 진행 방향과 바람 방향이 반대가 되면서 강도가 상쇄돼 풍속이 낮아지는데 힌남노는 중심부가 강하게 발달한 좌우 대칭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 때문에 ‘가항반원(안전반원)’에 해당하는 왼쪽 지역(한반도 내륙과 전남 해안가) 역시 안심할 수 없다.
강 교수는 “힌남노는 강하게 대칭 모양으로 발달했고, 북태평양 고기압 등 주변의 흐름보다는 스스로의 동력으로 움직이는 구조이기 때문에 오른쪽 왼쪽 구분 없이 모든 지역이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박정민 기상청 통보관도 “이번 태풍은 좌우 비대칭을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없는 수준으로 강력하다”고 경고했다.
태풍이 만조와 겹치면서 폭풍해일 피해가 커질 수 있다. 기상청은 브리핑에서 폭풍해일의 유의 파고는 12m 이상, 최대 파고는 15m를 훌쩍 넘길 수 있다고 예보했다. 유의 파고는 특정 주기 동안의 모든 파고 중 상위 3분의 1에 드는 물결 높이 평균을 말한다. 문 센터장은 “하루에 2번 달의 인력으로 바다의 해수면이 높아지는 만조 시간대가 있는데, 태풍이 이때 상륙하면서 폭풍해일의 규모를 키울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김판 양한주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