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경의 에듀 서치] 변변한 교육 수장 하나 못 찾는 집권세력 인재풀

입력 2022-09-06 04:02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월 5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박순애 전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만 5세 취학 논란으로 박 전 부총리가 사실상 경질된 지난달 8일 이후 교육 수장 공백은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김지훈 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날은 지난 3월 10일입니다. 6일로 181일째가 됐습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3월 18일부터 돌아가기 시작했죠. 지금으로부터 173일 전의 일입니다. 한국외대 총장을 지낸 김인철 전 부총리 후보자는 인수위 때인 4월 13일 지명됐습니다. 김 전 후보자는 ‘온가족 풀브라이트 장학금’ 논란 등으로 지명 20여일 만인 5월 3일 후보직을 내려놨습니다. 그리고 대통령 취임식이 5월 10일 열렸습니다. 120일 전입니다.

교육부는 장상윤 차관 대행 체제로 새 정부를 맞았습니다. 그러다 박순애 전 부총리가 5월 26일 지명됐습니다. 한·미 정상회담 기자회견장에서 “내각 대부분이 남성”이란 한 외신 기자의 비판성 질문에 윤 대통령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모습이 전파를 탄 지 닷새 만이었죠.

지난 7월 5일 윤 대통령은 인사청문회 없이 박 전 부총리에게 임명장을 줬습니다. 음주운전 전력과 여러 연구윤리 위반 의혹에도 지난 정부 각료들에 비하면 낫지 않느냐며 임명을 강행했습니다. 박 전 부총리는 결국 ‘만 5세 취학’ 논란을 일으키고 지난달 8일 사실상 경질됐습니다. 그는 취재진 질문을 피해 황급히 자리를 뜨다가 신발이 벗겨지는 촌극을 연출하기도 했죠. 사회 부총리를 겸하는 교육부 장관직은 아직 공석입니다. 교육 수장 공백이 한 달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복기해 보니 분명해지는 게 하나 있습니다. 지금 이 나라를 이끄는 집권 세력의 인재풀에는 변변한 교육부 장관감 하나 없다는 겁니다. 윤 대통령도 시인한 지점입니다. 지난달 23일 도어스태핑 현장으로 돌아가보죠. 박 전 부총리 사퇴 뒤 보름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취재진은 교육부 장관 지명이 언제 될지 물었고 윤 대통령은 “지금도 열심히 또 찾으면서 동시에 열심히 검증도 해나가고…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새로운 이를 물색하고 있다는 얘기였지만 그때 이후 다시 보름이 흐르도록 추가 소식은 없습니다.

윤 대통령은 “현재 새 교육정책을 보여드리는 상황은 아니어서 차관들과 대통령실 수석들이 잘 협조해 교육 문제는 원만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언급도 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지금은 교육 수장을 비워둘 정도로 녹록한 상황이 아닙니다.

지방대들은 수도권 대학 입학 정원을 늘리는 반도체 등 첨단인재 양성 정책에 집단 반발하고 있습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일부를 대학에 지원하는 ‘고등·평생교육지원 특별회계’ 신설은 전국 교육감 반대에 직면해 있습니다. 거대 야당도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교육부 장관이 직접 설득해도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백년대계’를 이끌 국가교육위원회는 법으로 정해진 출범 시기를 넘겨 감감 무소식입니다. 교육부가 국민 의견을 듣겠다며 지난달 30일 공개한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은 ‘역사 전쟁’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교육과정이 확정·고시되는 연말이 다가올수록 갈등이 더 격화될 듯합니다. 역사 교과 말고도 교육과정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영역입니다. 교육부의 강력한 리더십과 협상력이 필요하죠.

이런 와중에 흘러나오는 장관 하마평은 교육 행정을 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수 유력설’이 특히 그랬습니다. 사실 정 교수 이름은 꽤 오래 전부터 소문으로 돌았습니다. 하지만 설마하는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그러다 일부 언론에서 ‘유력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온 뒤 교육부 직원들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정 교수는 2001년 제44회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교육부에서 서기관을 지낸 뒤 2012년 이화여대 교수로 자리를 옮긴 인물입니다. 교육부에 남았다면 아마 과장 정도의 직책을 수행하고 있었을 겁니다. 어떤 간부는 “사무관으로 데리고 있던 사람인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정 교수 말고도 예닐곱의 이름이 오르내렸습니다. 그때마다 교육부가 들썩입니다. “현재 대한민국 최대 교육 현안이 장관 지명”이란 자조가 나올 정도입니다. 관가(官家)에선 대통령실의 ‘여론 떠보기’로 분석하기도 합니다. 자신 있게 내세울 인물이 마땅치 않으니 먼저 대상자를 노출시켜 여론을 살피는 것 아니겠나는 추측인데 만약 그렇다면 참 고약한 짓입니다.

대통령실 주변에선 “국회 인사청문회에 대한 부담으로 인물 찾기 어렵다”는 얘기가 흘러나옵니다. 후보자 가족까지 겨누는 검증의 칼날이 두려워 직을 제의 받고도 고사하는 이들이 많다는 겁니다. 괜히 수락했다가 지금 하는 일(예컨대 교수직)도 못하게 된다며 서로 말리는 분위기도 있답니다.

이는 집권 세력에 변명이 될 수 없습니다. 공직자 검증 시스템을 탓하기 앞서 그들의 빈약한 인재풀에 대한 자성부터 있어야 할 것입니다. 2021년 기준으로 교육대학에서 예비 교사를 양성하는 전임교원만 843명입니다. 사범대학으로 범위를 넓히면 1882명이죠. 고등교육기관 수는 426개입니다. 4년제 대학으로 범위를 좁혀도 190개입니다. 대학 총장만 190명 있습니다.

한 평생 교육만 파고든 베테랑들은 이 밖에도 많습니다. 학교 현장에서 오랫동안 학생들과 지낸 교사라고 교육부 장관 못하리란 법은 없습니다. 교육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해온 연구자들도 다수 있습니다. 교육계 밖으로 눈을 돌리면 더 많을 수 있습니다. 정치인도 있고 공직자 출신의 노련한 교육 행정가도 있습니다. 최장수 교육 장관 타이틀은 정치인이 갖고 있습니다. 정치 코드가 맞는 우리 편에서, 집권여당 주변에서만 찾으니 인물이 없다고 봐야 합니다.

윤석열정부는 교육과 연금, 노동 분야를 ‘3대 개혁 과제’라고 지목했습니다. 교육 수장 한 명 찾지 못하는 수준의 인재풀로 교육 개혁이라? 코미디입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