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지속가능한 한류를 위해

입력 2022-09-06 04:02

다음 주 이맘때엔 모두가 기뻐할 소식이 추가로 도착할지도 모르겠다. ‘오징어 게임’이 후보에 오른 제74회 프라임타임 에미상 시상식이 오는 12일(현지시간) 열리기 때문이다. 한국시간으로 5일 먼저 발표된 7개 부문에선 이유미가 여우단역상을 받는 등 4관왕에 올랐다. 1주일 뒤에는 최우수 드라마 시리즈 부문과 남우주연상, 남녀조연상, 감독상, 각본상 등 주요 6개 부문 수상자 호명을 기다리게 됐다. 에미상은 잘 알려진 대로 음악계의 그래미상, 영화계의 오스카상, 연극·뮤지컬계의 토니상처럼 미국 방송계를 대표하는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시상식이다.

그동안 K콘텐츠 제작자와 한류 연구자, 대중음악평론가, 영화평론가를 만날 때마다 빼놓지 않고 물어본 질문 중 하나가 한류의 지속가능성이었다. 다행스럽게도 20여년간 쌓아온 한류라는 공든 탑이 쉽사리 무너지리라 예측한 전문가는 없었다. OTT와 유튜브 같은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으로 세계 각국의 모든 콘텐츠가 똑같이 경쟁하는 문화전쟁의 시대가 열렸지만 이들 새 플랫폼에 가장 빠르게 잘 올라탄 것이 K드라마와 K팝이고, 노하우와 토대가 쌓인 만큼 당분간 이런 경향은 지속할 것이라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다른 질문은 한류의 기세를 이어가기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한가였다.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이 K콘텐츠의 문화 다양성에 대한 감수성 문제였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해 드라마 ‘라켓소년단’과 넷플릭스 예능 ‘솔로지옥’이 각각 인도네시아에 대한 부정적 묘사와 출연자의 하얀 피부에 대한 언급으로 해외 시청자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던 일이다. K팝에서는 비슷한 문제가 더 잦았다. 가수 현아가 흑인용 곱슬머리 가발을 착용한 사진을 공개한 것이나, 마마무가 공연에서 얼굴에 검은 칠을 하는 ‘블랙 페이스’를 했던 게 해외 팬들 사이에 논란이 됐다. 블랙핑크의 ‘하우 유 라이크 댓(How You Like That)’ 뮤직비디오는 인도 팬들의 격렬한 항의로 힌두교 신상 장면을 삭제했다. 뉴욕타임스는 왜 K팝 스타들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물었다.

지난달 인터뷰했던 우미성 연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도 일맥상통하는 지적과 조언을 했다. “그동안은 웃음의 소재도 ‘우리끼리 말인데~’ 식의 것들이 있었다. 외모 지적이나 성차별적 발언처럼 ‘우리끼리’에 속하지 않는 존재들을 비하하고 놀림의 대상으로 삼는 것 말이다. 우리끼리 해왔기 때문에 못 느꼈지만 외부의 시선으로 문제라고 느끼는 것들을 인식하려면 글로벌한 안목이 필요하다.”

잣대가 과하다 싶을 때도 있다. 남성 듀오 노라조는 10년 전 히트곡 ‘카레’가 뒤늦게 소환돼 사과하기도 했다. 후배 아이돌 세븐틴 이 ‘카레’를 부른 후 해외 팬들로부터 가사가 인종차별적이고, 뮤직비디오 역시 인도에 대한 고정관념이 담겨 있다는 비판이 일었기 때문이다. 박기수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한류의 열풍이 거셀수록 성찰의 자세도 깊고 진지해야 한다”며 “문화는 정서적 자발성에서 출발하며, 서로를 인정하고 나누는 공존의 자세를 전제로 한다. 문제의 핵심은 얼마나 압도적일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지속적으로 다양한 가치를 나누며 함께 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다.

문화 상품을 판매하는 입장에서 문화 다양성에 대한 더 세심한 고민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원래 이라크를 배경으로 했지만 문제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우르크라는 가상의 국가로 바꿨다. 덕분에 논란에 휘말리지 않았고 드라마는 큰 성공을 거뒀다. 다른 인종이나 국가의 문화를 차용하는 ‘문화적 전유’라는 개념에 대한 논쟁이 치열하지만, 역지사지해보면 될 일이다.

권혜숙 인터뷰 전문기자 hskw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