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는 히딩크 이전과 히딩크 이후로 나뉜다. 히딩크 이전 한국 축구는 후반 15분부터 급격히 떨어지는 체력, 고질적인 문전 앞 골 결정력 부족, 한두 명에 의지하는 판에 박힌 전략 등으로 볼 때마다 아쉬움이 남았다. 히딩크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잘 모르는 선수들이 많이 나타났다. 박지성도 갑자기 등장한 무명의 선수였다. 말 안 통하고 눈치 볼 것 없어 ‘정치’에 신경 쓸 필요 없었던 히딩크는 대표선수를 뽑을 때 이름값을 외면하고 철저하게 경쟁 원리를 도입했다. 이 경쟁 원리는 지금까지 적용되고 있다. 한국은 브라질, 독일,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스페인에 이어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월드컵 본선에 10연속 진출한 국가가 됐다. 축구뿐 아니라 양궁, 사격, 펜싱을 비롯한 여러 종목에서 한국 스포츠가 이름을 날리고 있는 이유도 경쟁 원리 때문이다.
경쟁 원리를 제약하는 것은 대부분 정치 논리다. 그 시작은 감성에 호소하는, 경쟁으로부터의 예외 인정이다. 지역 안배, 균형 발전 그리고 약자 보호를 위한 임시 조처 등이다. 슬며시 들어 온 정치 논리는 한 번 자리 잡으면 양보하지 않는다. 이해 당사자를 키우고 세력화해 기득권이 돼 버린다. 경쟁 원리가 자신의 영역에 도입되는 것을 막는다.
전통시장, 골목상권 및 소상공인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2012년부터 대형 유통점에 대해 격주 일요일 영업제한을 시작한 이래 대형마트 매출액은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일자리도 줄었다. 대형 유통점의 매출 감소가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의 매출 증가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보다는 편의점이나 홈쇼핑으로 빠져나간다. 문제는 인위적 규제로 대형 유통점이 경쟁할 수 없도록 손발을 묶어버려 유통산업 발전 자체가 제약되고 있다는 점이다. 바쁜 맞벌이 부부가 일요일에 편리하게 쇼핑하는 기회를 막고,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복합쇼핑몰 허가도 내주지 않아 주민들의 편의를 가로막고 있다.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정부 규제와 함께 경쟁이 제한되고 있는 대표적 영역은 공기업과 공공기관이다. 경제 개발기에 민간 능력이 취약해 할 수 없이 ‘임시로’ 공기업을 통해 맡았던 인프라, 에너지, 금융, 물관리, 교통 부문의 굵직굵직한 산업 대부분을 50여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정부가 통제하고 있다. 다른 선진국에서는 민간이 경쟁 원리를 통해 성장해야 하는 알짜 산업을 정부가 선점하고 못 들어오게 지키고 있는 셈이다.
교육 분야에서도 정부는 가격 규제와 재정 지원이라는 양날의 검을 휘두르며 민간 자율성을 제약하고 경쟁 원리를 침해하고 있다. 학생 수 감소로 지역별 교육 예산을 다 쓸 수 없어 다음 해로 이월까지 된다는데 대학에 대해서는 정원을 줄이고 등록금을 동결하고 있다. 교육부의 기준과 틀에 맞는 ‘말 잘 듣는’ 대학에 대해 재정을 지원하는 병 주고 약 주는 정책을 병행한다. 돌이켜 보면 대학 정원제는 대학 간 자율적 경쟁을 제약하고 전국에 걸쳐 군 단위까지 우후죽순으로 대학을 설립하게 만든 주요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
경쟁 원리보다 정치를 앞세우면 경제주체는 경쟁력을 강화하기보다 정치력을 강화하려고 애쓴다. 생산 현장과 시장을 지키기보다 자신들의 이해를 강화하고 정부와 국회에 로비하기 위해 협회와 사업자단체를 만든다. 민생이란 이름으로 국회에는 각종 규제 법안이 쏟아진다. 국제화되고 개방화되는 시기에 국내에서 경쟁을 제약하는 행위는 남문은 열어 놓고 북문만을 지키겠다는 어리석은 작전이다. 국민 경제를 지켜주는 힘은 경쟁과 자율이지 이를 가로막는 정치가 아니다. 경쟁 원리보다 정치를 앞세우면 도태된다.
조성봉(숭실대 교수·경제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