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물 고인 반지하… 수재민, 또 태풍에 “할 수 있는게 없다”

입력 2022-09-05 04:08 수정 2022-09-05 04:08
강원도 강릉시 경포 진안상가 일대에 4일 대형 양수기가 설치돼 있다. 강릉시는 제11호 태풍 힌남노에 대비해 상습 침수지역에 배수시설을 설치했다. 연합뉴스

제11호 태풍 ‘힌남노’의 북상 소식이 전해진 4일 서울 동작구 한 반지하 방에 사는 일용직 노동자 이모(59)씨는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우면서 휴대전화에 올라오는 기상특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의 반지하 방은 지난달 8일 수도권 일대에 내린 기록적 폭우로 허리춤까지 물이 들어찼었다.

이씨는 “태풍이 와도 집을 지키고 있는 것밖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차수판이고 역류방지장치고, 골목에 물이 넘치면 소용없는 건 매한가지”라고 말했다. 한 달간 침수된 집 복구에 매진했지만 새 가구를 들여놓을 새도 없이 초강력 태풍 소식이 들려오자 망연자실한 상태였다. 이씨는 “그저 지난번만큼 비가 오지 않기만 바랄 뿐”이라고 한숨 쉬었다.

빗방울이 내리다 그쳤다를 반복한 이날 동작구 성대전통시장 일대 주택가에선 아직 마무리되지 못한 수해 복구와 태풍 대비가 한데 뒤섞였다. 일부 반지하 가구 앞에는 설치하려고 꺼내둔 차수판이 눈에 띄었다. 이미 차수판을 덧댄 채 태풍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집도 많았다. 근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 입구엔 물을 막기 위해 100개 넘는 모래주머니도 쌓여 있었다.

하지만 아직 힌남노 대비를 못한 이들도 상당수였다. 지난주에야 내부 복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는 김모(55)씨는 “구청에 차수판을 신청했는데 아직 설치되지 않았다”며 “혹시 몰라 태풍 피해가 클 경우에 대비해 며칠 머물 곳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반지하에 살던 발달장애 가족이 침수로 고립돼 참변을 당한 관악구 신림동 역시 피해 대비보다 아직 피해 복구가 한창이었다. 골목 모퉁이마다 못 쓰게 된 매트리스와 가구가 눈에 띄었다. 벽지며 장판을 가는 공사 소리도 골목골목 들려왔다.

인근의 한 다세대주택 주인을 따라 들어간 반지하 방엔 콘크리트 벽면과 바닥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바닥 아래 고인 물을 빼기 위한 양수기 한 대가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그는 “태풍 예보를 챙겨보고 있지만 방법이 없다”며 “대문 앞에 쌓을 모래주머니 하나 지급받지 못해 큰일”이라고 우려했다.

지난 폭우 피해로 아직 장사를 재개하지 못한 관악신사시장 상인들 얼굴에도 긴장감이 묻어났다. 이 시장에서 40년간 방앗간을 해왔다는 노모(65)씨는 “카드결제기는 지난주에야 고쳤고 전화는 아직 먹통”이라며 “수리 요구가 워낙 많아 복구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한다”고 전했다. 목재 가구점을 운영하는 60대 여성도 “(태풍 소식에) 불안해서 한숨도 못 잤다”며 “가게를 지키고 있어야 하나 싶다”고 하소연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비롯한 4개 부처 장차관이 이날 오전 태풍 점검을 위해 관악신사시장을 찾았지만 상인들의 우려를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점포가 다시 침수될까 봐 명절 대목을 앞두고 물건도 새로 들여오지 않았다는 여성의류 판매업자 이모(62)씨는 “장관이 오고 시장이 오면 뭘 하느냐”며 “달라지는 게 없다”고 토로했다.

송경모 이의재 기자 s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