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간 현금수송, 비밀문서 수발신 등 업무를 도맡아온 한국금융안전이 새 주인을 찾기 위해 시장에 나온다. 이 회사 지분 60%를 보유한 은행들이 지분 매각을 결정하며 사실상 손을 떼기로 결정한 것이다. 수년간 지속되고 있는 사내 노사갈등과 경영권 분쟁에 지친 은행들이 최후의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해석된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 우리은행, 신한은행, IBK기업은행은 지난달 31일 KB국민은행을 주간기관으로 한 ‘한국금융안전㈜ 주식매각협의회’를 꾸리고 이들이 보유한 지분에 대한 주식 매각 절차를 시작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KB국민은행측 제안에 따라 시중은행의 출구전략이 세워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금융안전은 은행 간 현금 수송이나 비밀문서 송수신 등 업무를 처리하는 기업이다. 지난 1990년 이 같은 업무의 외주화 필요성을 느낀 6개 시중은행이 공동출자해 설립했다. KB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IBK기업은행의 지분율이 59.54%에 달한다. 매출 기준으로 보면 시장점유율이 70%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1위 자리를 지켜온 한국금융안전이 설립 32년 만에 매물로 나온 배경에는 수년간 지속되고 있는 ‘CEO 리스크’가 있다. 최대주주인 김석 전 대표이사는 지난 7월 자신의 연임을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주주인 시중은행들이 반대해 무산됐다. 현재 이 회사의 대표이사는 공석이다.
은행들이 김 대표의 연임을 반대한 이유는 수년간 노사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는 탓이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한국금융안전지부 노조원들은 지난해 7월부터 “김 대표가 주52시간 제도를 악용해 급여를 삭감해왔다” “직원 대부분이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다” 등 주장을 펼치며 국회 앞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노조 일각에서는 주요 주주인 시중은행이 사회적 책무 차원에서 김 대표 연임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도 은행들이 경영권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압박했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금감원과 기업은행이 국책은행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앞장서서 다른 주주은행들을 설득시키고, 의결권을 모아 경영 정상화를 위해 대표이사 교체라는 특단의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임직원 입장에서 주주인 우리(은행)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게 이해는 가지만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특정 세력의 편을 든다는 게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결국 은행들은 지속되는 사내 분쟁에 휘말리는 등 실익이 없다는 판단에 지분을 매각하고 아예 발을 빼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금융안전은 김 대표가 2019년 취임한 이래 2019년(-7억원) 2020년(-20억원) 2021년(-7억원) 등 연속적인 적자를 기록 중이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금수송업체가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닌데 지분을 보유했다는 이유로 갈등 관계에 끌려다니는 것보다는 차라리 손을 떼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