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도 일대에서 간첩활동을 해온 혐의로 1977년 무기징역 등이 확정됐던 고(故) 김재민씨와 아내, 자녀 등 일가족 5명이 지난 1일 재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이들이 과거 수사기관에 불법 구금돼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했고 그 과정에서 잔혹한 국가 폭력이 개입됐을 것이란 강한 의심이 든다며 무죄 이유를 밝혔다. 간첩이란 주홍글씨가 새겨진 지 45년 만에, 그것도 김씨 부부는 세상을 떤난 뒤에야 누명을 벗은 것이다.
군사독재 정권이 지배하던 1960~80년대에는 이와 같은 간첩 조작 사건이 비일비재했다. 북한 인근 해역에서 조업 중 실수나 풍랑 등으로 월경하는 바람에 납북됐다가 돌아온 어부, 국내로 유학 온 재일동포, 반정부 인사 등이 간첩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공안 경찰과 검찰, 국가안전기획부 등은 가혹한 고문으로 허위 자백을 받아내 피해자들을 간첩으로 엮었고 독재 정권은 이렇게 조작한 사건을 민주화운동 탄압과 정국 전환용으로 악용했다.
간첩 조작 사건들도 그렇지만 5·18 민주화운동 유혈 진압, 삼청교육대,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유서대필 사건 등의 국가폭력들이 끊이지 않았다. 국민을 보호하라고 위임한 공권력을 남용해 무고한 피해자에게 고통을 안긴 국가폭력은 용납될 수 없는 범죄다. ‘거문도 간첩단 사건’ 재심 재판부는 “가장 극악한 것이 국가폭력”이라며 “막강한 인적·물적 조직을 가진 거대한 국가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국가폭력은 여러 국가기관과 권력자들의 조직적 개입과 은폐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 진상을 밝히는 데 어려움이 많다. 정부가 사건의 실체를 밝히고 피해 배상과 명예회복을 위해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다.
국회에는 국가폭력 인권침해범죄의 공소시효를 없애는 형사소송법 개정안과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한 국가배상 소멸시효를 폐지하는 국가배상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국회가 입법을 위해 적극적이고도 전향적인 검토에 착수하길 기대한다.
라동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