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확실한 치료제나 치료법이 없는 알츠하이머 치매에 방사선 치료가 해법이 될 수 있을까. 근래 암 치료에 주로 쓰이는 방사선으로 치매를 극복하려는 연구가 활발히 모색되고 있다. 동물실험 등을 통해 가능성을 확인한 국내 의료진이 사람 대상 임상시험을 시작한다.
강동경희대병원 방사선종양학과 정원규, 신경과 이학영 교수팀은 알츠하이머 경증 치매 환자 대상 저선량 전뇌 방사선 조사(照射)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평가하는 연구자임상시험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승인받아 참여자 모집에 나섰다.
만 60~85세에 알츠하이머 경증 치매 진단을 받고 기존 약물 치료를 3개월 이상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사람, 인지 기능 및 변화, 전반적인 상태 등 정보 제공이 가능한 보호자가 있는 사람, 아밀로이드PET(양전자방출단층촬영)영상에서 아밀로이드 베타의 뇌 축적이 확인된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아밀로이드 베타는 뇌에 쌓여 신경세포를 죽이는 독성 단백질로 알츠하이머병의 원인 중 하나다. 모집 대상은 총 30명이다. 대상자는 1년간 방사선 치료에 따른 인지 기능 개선 효과 및 이상 반응을 확인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뇌종양 혹은 뇌전이 암환자들에게 방사선 치료 시 두통 구토 피로감 식욕저하 피부변색 탈모 등이 나타날 수 있으나 이번 연구에 사용되는 방사선량은 전이성 뇌암 치료 선량의 5% 이내기 때문에 부작용이 적다는 게 의료진 설명이다.
앞서 정원규 교수가 포함된 대학 공동 연구팀(건양의대 문민호 교수 등)은 2020년 국제학술지 ‘분자과학저널’에 저선량 방사선 치료가 알츠하이머 치매의 비약물 치료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동물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저선량 방사선 치료를 받은 치매 쥐가 대조군보다 시냅스(신경 연결망) 퇴행, 신경 손상 등을 억제하고 뇌 속 청소부 역할을 하는 미세아교세포 수와 기능을 회복하는 것을 확인했다. 또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로부터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효과도 얻었다. 아울러 저선량 방사선 치료 8주 후 치매 쥐의 뇌를 확인한 결과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수와 양이 유의하게 줄고 치료받은 치매 쥐들의 기억·학습 능력이 치료받지 않은 쥐들에 비해 향상된 것을 확인했다. 정 교수는 5일 “이번 연구를 통해 초·중기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인지 기능을 향상하는데 저선량 방사선 치료의 역할을 규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